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른이 Feb 03. 2021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Just Do It.

중, 고등학교부터였을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언제부터인가 항상 무언가를 '해야만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삶의 목적과 원동력은 성공 또는 안정된 미래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언제나 해야 하는 것들을 충실히 수행했다. 학창 시절은 내신관리, 대입 준비가 지상과제였고 대학교를 입학해서는 학점관리, 자격증 준비, 취업준비에 매달렸다. 시간의 총량은 모르겠지만 삶의 무게중심은 분명히 해야 하는 일에 쏠려 있었다. 그때는 그 일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완성도 있게 달성하느냐에 삶의 성공과 실패가 나뉘고, 사람의 가치가 결정될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훗날을 기약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당연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승진과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몰려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꽉꽉 채워 살다 보니 10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런데 문득 시간이 흘러,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지자 혼란스러워진다. 

"이제 뭐 하지?"




입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문득 텅 빈 시간을 마주쳤다. 언제부터인가 퇴근 후부터 잠들기 전까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어중간한 시간이 텅 비어 있었다. 처음엔 그 공허의 시간의 실패의 증거인지 당연히 누려야 할 여유인지 헷갈려 갈팡질팡 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정의 내릴 순 없었지만 어찌 됐던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생각만 해왔던 일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던 영화를 몰아보고, 게임을 미친 듯이 했다.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목적 없는 공부도 했다. 친구를 만나고 연애를 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가정에 충실하던 중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웠다. 그렇게 그 공허한 시간을 나만의 삶으로 가득 채운 것 같았다. 그렇게 삶은 편안했고,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10년 이 지난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오래전 떠나보냈다고 생각한 텅 빈 시간이 여전히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않아 있었다. 지난 시간 하고 싶은 일들로 그 시간을 채우려 많이 노력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정작 그 시간은 해야 하는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한 노력으로 가려져있었을 뿐이었다. 하고 싶은 일들은 잠깐의 관심 끝에 바쁜 일상에 치여 홀해진 채 기억의 한 순간에 박제처럼 던져져 있었다. 아무리 미친 듯이 바쁘고 정신없는 회사 일과 가정생활로 그 시간을 가득 채운다고 해도 결국 텅 빈 시간의 공허함은 내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퇴근 후 텅 빈 시간을 설거지와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핑계 삼아 회피했다. 남는 시간엔 아이들에게 교육이란 미명 하에 앞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시시콜콜 가르쳤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들을 각인시켰다. 여전히 삶은 해야 하는 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다음 세대에게까지 그런 삶을 이어주려 하고 있었다. 문득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모른 체했을 뿐이었다.  이 공허함을 탈출할 수 있는 열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처음엔 꽤나 만족스럽고 충만하다. 하지만 그 하고 싶은 일이 '흥미'와 '자극'을 목적으로 한다면 결국 어느 순간 무뎌지고 흥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된다. 왜냐하면 애초에 무언가 성취를 이루고 더 나아가려는 욕구보다는 새로운, 신선한 자극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고 싶은 일이라도 어느 경지가 되면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 단계에서 때론 실패를 겪을 것이며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지거나 억지로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때 그 어려움을 극복할 계기, 목표, 흥미, 재미가 없다면  자연스레 관심에서 멀어지고 다른 일들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가장 최악은 시작할 때 상상했던 모습과 실제 그 일의 현실과의 갭이 클 때이다. 이런 경우는 그 자체로 시작과 동시에 끝날 수도 있다. 누구나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의미 있고 희망차고 밝은 미래를 그리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이 생각과 다름을 깨닫는 순간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설령 그 일을 밀고 나간다고 해도 필요한 정신력과 에너지는 적당한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다 보면 막연한 느낌과 만족감, 꿈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고 시작했다가 주저앉기 십상이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대 시절 하고 싶은 일이란, 좀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으로 행복하고 충만한 그런 일이었다. 과정의 어려움은 상관없이, 그 일을 통한 경험과 성취에서 오는 보람이 아무 이유 없이 좋은 그런 일들이었다. 그것은 취미와는 명백히 다른 것이었고 오히려 좀 더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에 가까웠다. 막연하지만 그 일 자체로 의미 있는 그런 일이었다. 그래서 자극이 약해져도, 어려움이 닥쳐도, 실패를 겪어도, 많은 노력이 필요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조건이 많아졌다. 이 일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 무가치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기도 어려우며 정신적인 만족감 외에는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는커녕 끝없는 시간과 노력의 투자를 요한다면 섣불리 선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깨달은 것은 그런 걱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인생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여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아쉬움만 길게 남겨졌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이것저것 굳이 잴 필요가 없이 그냥 그 일을 하는 것 자체로 이미 완성된다. 설령 돈이 되지 않아도 누군가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 일을 하는 당사자가 만족하는지 행복한지 더 하고 싶은지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반드시 이해타산적이고 어른스러워 지려 애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루에 텅 빈 시간만큼은 여전히 어린 시절 막연하고 대책 없는 생각에 인생을 올려놔도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다. 해야 하는 일만 하며 산다고 딱히 더 나아질 것도 없는 인생인데 굳이 애써 참아가며 살 필요가 있을까?

더 늦기 전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하고 싶은 일위에 쌓인 뽀얀 먼지를 털어내고 천천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굳이 열심히 할 필요도 없고 성과를 내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그 일은 역할을 다 한 셈이다.  행여나 해야 하는 일이 너무 지겨워서 하고 싶은 일에 성공이란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면 얼른 그 마음을 접길 바란다. 그 순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일이 될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싶다. 그 일이 이 삶을 어디로 인도할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차피 중요하지 않지 않은가? 그래서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쓰려고 한다. 공모전 당선, 조회 수 등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그냥 재밌고 뿌듯하면 그걸로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간 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