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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Sep 25. 2020

빨간 눈

상처를 준건 때린 아이인가 화를 참지 못한 아빠인가.

어느 날 퇴근길, 여지없이 아들이 뛰어나와 휴대폰을 채가려 한다.

게임이 하고 싶어 하루 종일 목이 빠져라 기다린 맘을 알기에 모른 척 주려는데 덜컥!

손이 멈춰버렸다.


- 아들, 눈 왜 그래?

- 아 몰라~~


고작 6살짜리의 오른쪽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들은 왠지 말을 꺼려했지만 게임을 볼모로 다그치니 결국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린이집의 한 살 많은 형이 악어 장난감을 막아보라며 던져서 맞았음을 알아냈다.


- 선생님은 뭐래?

-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 했어~

- 말 안 했어?

- 응 안 했는데~


' 아무리 애들이 말을 안 해도 그렇지. 애 눈이 이렇게 된 걸 몰랐다고? 최소한 부모한테 애가 다쳤다고 문자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결국 화를 삭이지 못하고 밤 9시에 전화를 걸었다.


- 선생님 죄송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요?(죄송합니다.)... 애 눈인데..(몰랐습니다.) 뻔히 보이는 데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미처 못 봤습니다.)... 그쪽 부모 연락처 알려주세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선생이 중재를 하고 애들이 괴롭히면 말리든가 해야지!!(......)... 제 말이 부당합니까!!!!(......)....


아이가 다쳤다는 아픔과, 가뜩이나 작은 아니가 힙업이 당했을 생각에 분함과, 맞벌이라 제대로 애들을 챙기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뒤섞여 순간 격하게 쏟아냈다.

그렇게 쏟아내 봐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물론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다친 것이야 어린이집의 책임은 맡지만.... 이 분노는 단순히 그것 때문이 아님을 적어도 스스로 알기에 쏟아내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 아들 아빠가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어.

- 선생님한테 아빠가 전화했어?

- 응. 너 다쳤다고, 그 형 혼내주라고 했지.

- 아 왜~~ 부끄럽게~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본인이 다쳤음에도 고작 6살짜리가.... 부모의 행동이 부끄럽다니..


- 뭐가 부끄러워?

- 난 그 형 좋은데~말하지 말지~

- 아빠가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싫어?

- 응~선생님이 싫어하면 어떻게 해?


그제야 행여나 선생님이 아들에게 행여나 악감정을 갖진 않을지, 무관심해지진 않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어쩌면 작은 일을 자식이라는 이유로 확대 해석하고 과잉반응을 보인 건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내 혹시 모를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 차원에서라도 불가피한 행동이었으며, 6살은 알지 못해서 저렇게 느낄 수밖에 없을 거라며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들을 위한 행동이 아들을 상처주진 않았는지 찝찝했다.



다음 날 아들에게 물었다.


- 선생님이 뭐래?

- 형아랑 놀지 말래. 아~ 그 형 좋은데~놀지 말래~아빠가 전화해서 그래~

- 그래서 싫어?

- 아니~싫은 건 아닌데~형아랑 맨날 놀아야 되는데~


그 와중에서도 싫다고 하면 아빠가 상처받을까 괜찮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고마웠다. 이제 6살짜리가 뭘 그리 눈치를 보고 배려를 하는지... 대견하고 고맙지만 미안하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못 놀게 했다는 데 그게 어떤 조치였을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은 발을 뻗으면 안 될 것을 알기에 궁금증을 눌렀다.




나의 분노는 과연 누구를 위한 분노였을까?

결국 이 분노로 아들은 어떤 이익을 얻었을까? 잠재된 위험에서 벗어난 건지, 멀쩡한 친구를 잃게 한 건지 확신이 안 생긴다. 그제야 얼마 전 아무도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다며 슬퍼하던 아들이 떠올랐다.


빨갛게 충혈된 아들의 눈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저 눈의 상처보다 더 큰 가슴의 상처를 아들에게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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