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바로 ‘실패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성공도 습관이라며 실패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며 펄쩍 뛰는 분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영업으로 시작해서 6년 근무했고, 영업기획/지원을 4년간 담당하고 있다. 몸 담고 있는 분야는 영업 환경이 조금 특수하다. 소비재나 원자재가 아닌 사치재로 판매단가가 수천만 원부터 억 단위까지 있다. 판매 지역 제한도 없으며(국내 한정) B2C와 B2B를 병행하는 전방위 영업이다. 실적의 99%가 아웃바운드에 의존하는데, 그조차 온라인이나 광고보다는 대부분 오프라인 대면 영업 중심이다. 쉽게 말해 '협소한 시장에서 맨 땅에 헤딩하는 옛날 방식 영업'이다. 성공률도 극악이다. 100명 중 1~2건을 성사시키면 다행이다. 1만 명에게 DM을 보내봐야 회신율은 10명도 안된다. 1%의 성공률에 0.1% 미만의 회신율을 대입하면 일반적인 DM/TM으로는 0.001%의 극악의 확률로 답이 없다. 인당 평균 연간 100건 이상을 팔아야 했으니 DM/TM 기준으로 매년 1천만 명을 대상으로 한 명의 영업사원이 일 년간 쉬지 않고 매일 약 2만 7천 명을 접촉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는 B2B 중심으로 다양한 판촉 전략을 통해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진 영업 환경이 척박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연히 영업사원은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그리고 실패는 실적에 대한 조바심과 치열한 경쟁의 스트레스를 한층 더 증폭시켜 영업 사원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거기서 영업사원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방법을 찾는 사람, 우직하게 반복하는 사람 그리고 포기하는 사람이다. 그중 살아남는 것은 방법을 찾는 부류다. 나머지 두 부류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백이면 백 회사에서 쳐내기 전에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간다. 실패에 마음이 잡아먹힌 채.
성공한 영업사원들의 강연이나 책을 볼 때 우리는 성공 사례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그 성공 스토리 뒤엔 과연 얼만 큼의 실패가 있을까? 당연하게도 그들 역시 그 많은 실패를 딛고 ‘성공한 영업사원’이 된 것이다. 영업에 왕도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수많은 좌절을 경험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실패를 잘 갈무리해야 한다.
실패에 익숙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끝’이 아닌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한 번의 시도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영업은 없다. 두 번, 세 번 고객을 설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고객을 이해하고, 니즈를 분석하고, 소구점을 찾아 설득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한 번의 시도가 무산되었다 해도 다시 기회를 노린다. 영업사원은 언제나 계약을 위해 인내해야 하고, 집요해야 한다. 이 과정의 어디에 ‘실패’가 있단 말인가. 결국 모든 것은 성공으로 이르는 과정일 뿐이다. 단 한 번의 승부처가 도래했을 때 모든 것을 쏟아부을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또한 실패 속에서 ‘경험’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감정적이기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판매전략, 행동양식, 표현방식, 상품 구성 등 다각면에서 시사점을 도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쌓이면 어느 순간 상품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갖추게 되고, 자신감이 높아지며 영업에 설득력이 생긴다. 괜히 ‘실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신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영업은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선’을 넘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온다. 싫어하는 상대를 칭찬하고, 싫어하는 술을 마시는 것은 애교다. 도덕적, 법적 경계에서 시험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선택의 기로는 끊임없이 영업사원을 시험하고 괴롭힌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선을 넘는 여부가 아니라 그 선택의 기준이다. 한 순간의 욕심이나 면피를 위해 선택을 하게 되면 그 선택은 설령 성공했을 때조차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신념을 잃은 선택은 영업사원의 마음을 좀 먹고 길을 잃게 한다. 영업이라는 정글에서 버티기 위해선 본인만의 신념을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실패를 가볍게 털어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난 영업팀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아니다. 바로 실패를 극복하고 이를 갈무리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샌님 같은 서울깍쟁이는 인생에 대한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설령 최악의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쌓이고 쌓인 실패들만큼 경험과 지혜가 늘었다. 밑바닥에서부터 치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작은 심지가 마음속 한 구석에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도전이 없인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도전은 또 다른 선택의 영역이다. 거창한 도전보다는 자신의 길에서 나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더욱 중요하다. 그 길을 실패가 좀 먹어 다가온 기회조차 놓치지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일매일 설레는 시작이 계속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