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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y 05. 2020

오늘도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작이 반'?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4월은 좀 나태했던 것 같아 5월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메모장을 열었다. 그곳엔 치밀하게 짜인 4월 계획이 방치되어 있었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서둘러 메모장을 닫았다.  


 매번 계획을 세운다. 대부분 이대로 안주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막상 계획을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충만했던 의지는 매번 바쁜 일상에 의해 무뎌지고 계획은 흐려진다. 결국 일상의 흐름에 맡긴 채 달라질 것 없는 시간을 영위한다. 남는 것은 촘촘히 짜인 계획표뿐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한다. 또한 '작심삼일'은 삼일마다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말들이 좋았다. 실패를 용서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궁극의 정신승리일 뿐이었다. 시작의 중요성을 알려줄지는 몰라도 인생이 용두사미인 사람에게는 시작에 안주하게 만드는 함정일 뿐이다.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 시작만으로는 남는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끝이다. 설령 기대에 못 미치고 초라하더라도 끝에 도달해야 한다. 누구나 계획은 세울 수 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과정 속의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각오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시작만 하는 사람보다 한 번이라도 끝을 본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하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이다.   
10년 전 작은 공모전에서 단편소설로 입선한 적이 있다. 우연히 생긴 한 달을 몰두해서 처음으로 한 편의 소설을 끝까지 썼다. 많이 부족했지만 운 좋게 가작으로 입선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입선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글을 끝까지 쓰게 되었다. 이전에는 막상 시작만 하고 결국 시놉시스로만 남은 작품만 10편이 넘지만 정작 완성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처음 ‘끝’에서 느낀 고양감이 계속해서 끝을 보고 싶다는 욕심을 만들었던 것 같다. 명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소한 성취로 인해 한 꺼풀 벗은 느낌이었다. 분명한 것은 한 편의 글을 완성할 때마다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어김없이 지키지 못하고, 결국 자책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매년 일기를 보면 질책과 후회로 가득한 자책이 어김없이 반복된다. 한결 같이 한심하다.

이는 의지박약 때문일 수도 있고 계획 자체가 허황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는 허울 좋은 변명임을 알고 있다. 실상은 힘든 것을 못 견디는 유약함, 천성적인 게으름, 근거 없는 자존심, 비교되기 싫은 자격지심의 화학적인 결합의 결과였다. 적나라하게 표현자면 ‘결과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어떤 일이든 숙련 단계에 들어서게 되면 시작할 때와는 달리 점차 복잡해지고, 신경 쓸 것도 처리할 일도 많아진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실패 확률도 높아진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급증한다. 그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극복하거나 도망치거나. 그리고 부담감에 못 이겨 도망을 선택한다면 결국 시작 단계에서 맴돌게 된다. 메모장에 쌓인 계획표처럼.


하물며 그 일이 의무감으로만 하는 일이라면 어떨까? 전혀 공감하지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세운 공부 계획, 부업 계획, 운동 계획, 이직 계획으로는 숙련의 단계 전에 결국 실패할 확률이 현저히 높다. 극한의 인내심을 지닌 사람들은 다를지 몰라도 모두가 그럴 순 없는 법이다.

지난 계획표를 보고 있노라면 불안감과 의무감에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내심 정말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계획을 세우며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억지로 꾸준히 한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잘못된 시작이었던 셈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달랐을까? 남들에게는 하찮아 보이더라도 좋아하는 일에는 특별한 계획 없이도 열렬히 몰입했던 것 같다. 라틴댄스와 골프를 배울 때 그랬다. 재미있는 책은 밤을 새워서 읽었고, 주식 공부는 무료하지 않았고, 공인중개사는 결국 합격했다.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임했고 목표가 뚜렷했으며 결국 무언가를 얻었고 그만큼 성숙해졌다.
 



성장 그래프는 정비례가 아닌 계단식 모양이다.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선 반드시 정체기가 있다는 의미다. 이 정체기를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작은 성취다. 작은 성취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더 높은 단계로 퀀텀점프를 하게 될 것이다.
‘시작’과 ‘끝’만으로는 부족하다. 운동에 끝이 있는가? 공부에는? 돈을 버는 것에는? 하나의 단계가 끝나면 그다음 단계가 열린다. 모든 계획은 더 큰 계획의 일부이며 결국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모든 시작과 끝은 ‘계속’된다. 결국 작은 성취가 더 큰 성취를 이루는 ‘계속’의 힘이 성장을 견인한다.
오늘도 좋아하는 글쓰기 속에서 작은 성취를 이룬다. 이 작은 성취를 통해 조금이나마 성장할 것을 믿으며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계획한다. 아직 이 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시작’과 ‘끝’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지금은 생각지도 못하는 곳에 닿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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