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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r 18. 2020

벚꽃 나무의 표정

너무 이른 방문, 아직 맞이할 준비가 안 됐네


지난 며칠 이어지던 꽃샘추위가 조금은 잠잠해진 아침, 이어폰을 귀에 꽂고 휴대폰 액정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걷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무심한 출근길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맞은편 신호등을 쳐다보려 고개를 드는 데 눈앞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예상치 못한 벚꽃이었다.


물론 지금은 봄이고 벚꽃이 필 시기라면 시기이긴 한데, 일기예보도 아직 개화 소식을 알리지 않고 신문도 잠잠한 데 너무도 느닷없는 벚꽃이어서 그 광경이 신기하고 낯선 것이 기괴하까지 느껴졌다.


게다가 근무지가 여의도다 보니 출근길이 바로 벚꽃이 유명한 윤중로다. 그런데 그 쭉 뻗은 윤중로 어디에도 꽃 봉오리는커녕 앙상한 가지만 덩그러니 내놓고 있을 뿐인데 그 벚꽃 나무 한 그루만 떡하니 꽃을 피우고 있으니 튀어도 너무 튀었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도 한 참을 나무 아래서 서성이며 벚꽃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왠지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고 이게 벚꽃나무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장면인데 왜인지 도통 믿기지가 않는 심정이었다.




문득 저 벚꽃나무를 의인화한다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개척 정신으로 똘똘 뭉친 탐험가의 단단한 얼굴일지,


남들 눈치 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가는 눈치 없는 맹목적인 얼굴일지,


자기도 모르게 괜한 설레발과 튀는 행동에 눈총을 받으며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일지,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남들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할 일을 하는 의연한 얼굴일지,


정신 차리고 보니 엉뚱한 길에 들어서 있어 당황한 표정일지,


그것도 아니면 섣부른 행동에 후회 가득한 얼굴일지, "


벚꽃나무의 표정이, 그 속내가 내심 궁금했다.


벚꽃을 뒤로하고 사무실로 향하는 중에도 벚꽃나무의 표정이 보일 듯 말 듯 어른 거렸다. 정확한 표정을 읽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 년에 한 번뿐인 가장 빛나는 시기에, 그 꽃 봉오리만 본다면 평생에 한 번 피어오르는 기회를 후회하면서 맞이해선 안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기왕이면 그 나무가 유독 해가 잘 들고 따뜻한 위치에 있어 지금이 가장 아름답게 피기 위한 적기이기에 자신의 소신대로 만개하였길 바란다. 그 한 번뿐인 선택의 결과가, 실수라면 왠지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어쭙잖게 주변 나무들과 시기를 맞추려다 정작 본인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한 선택을 했기에 당당하고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설령 그 선택에 후회와 의심이 침범할 기회를 노리며 그림자 속에 숨어있다 해도, 그 어둠에 물들지 말고 단단한 각오와, 의연한 태도로, 소신 있는 선택을 하며, 후회를 남기지 말고 남은 기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벚꽃 나무가 그래 준다면 어쩌면 우리도 치열한 생존경쟁의 최전선에서 비굴하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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