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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r 14. 2020

"그건 이미 다 해 본거야!"

변화하기 싫은? 귀찮은!

'그건 이미 해 봤어.'
'그건 우리 회사 시스템에 맞지 않아서 안돼.'
'겨우 생각한 게 그거냐?'

일을 하다 보면 상사나 선배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다. 가끔은 (과장해서) 경멸 어린 (피해의식 일지 모르지만) 조롱 섞인 시선을 포함하여 무시하는 듯한 그 언사 하나로 나의 고민과 노력이 담긴 기획안을 변기 물 내리듯 폐기시켜 버린다.
그럴 때는 정말 머리 뚜껑이 튕겨 나가 천장을 뚫고 나갈 것 같다. '그럼 넌 뭐가 하고 싶은데!!!'라는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스마트하거나 존경할만한 사람이 러면 이해라도 된다. 그렇지만 평소 상사 눈치나 보며 정치나 일삼고 일 골라하면서 신선놀음이나 하는 구 시대의 유물 같은 것들이 그럴 때는 이건 정말.... 같잖은 것들이 경험 하나만 믿고 나대는 꼴은 흉하디 흉한 법이다.
시대가, 시장이, 고객이 바뀌었건만 아직도 해봤는데 안된다니 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된 건지 납득이 안된다. 그리고 당연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니 기존 시스템에 맞지 않지. 기획안을 올릴 때 그런 것 하나 고민 안 해봤겠냔 말이다.
정말 그들을 폐기시켜버리고 싶다. 그들이야말로 우리 조직의 적폐 세력이다.


그런 와중 근래 꽤나 혁신적인 대규모 조직 개편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나를 포함 일부 젊은 직원들이 바라던 조직의 모습이었으니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어쨌든 기존의 체계를 뒤흔드는 개편이었다.

회사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변화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 out!

이젠 뭐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로 바뀌다 보니 부정적인 피드백이 쏙 들어가 버린 것 하나는 좋았다.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고 나니 구분이 되기 시작한다. 정말 효과성이 없어 커트된 기획안과 이걸 하게 되면 책임자들이 부담스럽고 귀찮아서 커트된 기획안들이 말이다. 결국 상사들은 변화가 두려웠던 것이다. 변화는 실패의 책임과 귀찮음을 동반하니 일견 이해는 간다.
리고 변화 자체가 조직의 목적이 되고 평가의 기준이 되니 많은 것이 달라진다. '안된다~안된다'던 상사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번 해봐야지' 하는 의욕을 내비치는 그 괴리감에 어안이 벙벙하다. 불과 1~2주 사이에 말이다.
그들의 충직한 조직 적응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 정도 하니까 관리자가 될 수 있나 보다. 참고로 비꼬는 것이 아니다. 막상 평소 변화를 외치던 나는 아직도 개편 이후의 업무 방향성을 수립하지 못하고 혼란에 사로잡혀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럴 때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어떤 부류일 것 같은가? 바로 눈치 하나로 회사 생활하는 그 적폐 세력들이다. 평소에 귀찮은 일은 미루면서 상사 눈에 띄는 일이나 할 줄 알지 변화와 혁신이라고는 머릿속에 눈곱만큼도 들어 있지 않던 사람들이 회의 석상이나 후배들 앞에서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뻔한 소리를 내뱉는다.  
조직 개편 이후에 따라오는 부서 간 R&R 조정이나 향후 업무 추진 계획을 수립할 때는 더욱 가관이다. 기계처럼 '변화'를 외치며 아랫사람을 닦달하기 시작하는 데 명확한 방향성도 없고 무조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라는 식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참으로 부조리하고 눈꼴시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역시 생존 방식이니 말이다. 생존에 비겁한 게 어디 있으랴.
그 와중에 정말 최악인 경우는 기억력은 어찌나 좋은지 과거에 지가 폐기시킨 기획안을 다 끄집어내 임원에게 들이밀기 시작하는 경우다. 그 와중에 그 아이디어는 본인의 생각으로 이쁘게 포장되어 있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 막상 임원이 좋아 보이니 좀 더 구체화해 보라고 지시라도 하면 그 이야기를 처음 꺼낸 후배 사원을 불러 꼬치꼬치 캐묻고 기획안을 구체화하라고 닦달하는 부분이 절정이다.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음 글쎄...


어쨌든 세상은 빠르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린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적응해야 한다. 일단 그 방편으로 기존에 해봤던 것들부터 분석하고 보완하여 새롭게 시도해보고자 한다. 변화라는 것은 도깨비방망이처럼 그냥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들을 서서히 개선하고 보완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중에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인사이트를 담아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과거 사례를 보면 그 상황에선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 이 부분을 좀 더 개선해봐야 할 것 같네'라고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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