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치기, 자기기만
이번에 글쓰기를 잊고 살았던 기간 동안 글쓰기는 인생의 우선순위 중 20위 안에도 못 들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글쓰기의 공백기는 항상 반복되어 왔다. 글 쓰기의 성수기 때는 아이디어도 샘솟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도전하고, 글도 매일 쓰다가도 비수기 때는 거짓말처럼 몇 개월씩 잊고 살기 일쑤였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글을 썼지만 막상 완벽하게 끝맺음을 한 작품이 몇 없다. 예전 일기장도 다시 펼쳐보면 일기조차 몇 개월씩 띄엄띄엄 쓰기 일쑤였다. 성수기 때 열정적으로 시작한 글이 비수기 때 철저하게 방치되기를 반복했으니 제대로 된 끝맺음이 될 리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번 성수기를 맞이하면서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매번 그랬듯 이끌리는 대로 새로운 소재와 이야기에 매달리다가 예고치 않은 비수기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생각은 과거를 향하고 내면을 관조하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호기심이었다. 책을 읽다 자연스레 떠올린 ‘나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를 써 보기 시작했다. 당시 시를 선택했던 이유는 수필이나 소설처럼 긴 글을 연필로 쓸 엄두가 나지 않았고(당시엔 컴퓨터로 글을 쓸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뭔가 좀 더 예술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상은 이야기를 풀어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지만, 시가 적성에 맞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스스로 완성한 시에 취해 한 차원 높은 사람이 된 듯 뿌듯해했었다.
이런 자기만족은 고등학생 때 한층 더 심해져 자기기만에 이르렀다. 글 쓰기가 취미임을 공공연하게 친구들에게 자랑을 함으로써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우쭐함을 가졌던 것 같다. 당시 글쓰기가 취미라고 하면 주변에선 멋있거나 조금은 특별한 사람처럼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는 행위에 집착을 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우월감은 부풀어 올랐다.
실제로는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았고, 여자 친구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고, 미래의 성공과 오늘의 일탈 사이에서 갈등하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지만 가증스럽게도 사람들 앞에선 작품을 논하고 지성을 추구하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학문의 탐구나 문학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지만 이미 스스로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규정짓고 거기에 맞춰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착각은 고3 말 최고조에 달해 문예창작과를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다 부모님과 대판 싸우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