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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일은 누가 하지?

이것은 업무분장인가? 폭탄 돌리기인가? 그들은 침묵할 뿐이다.

by 들른이

'이 팀은...... 내가 알던 그 팀이 아니다.'


팀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수남 씨는 생각했다. 지난 몇 년을 함께 했던 팀원들과 방금 회의실에 있던 팀원들이 정말 같은 사람은 맞는 걸까? 한숨이 나고 머리가 아파오는 수남 씨였다.


팀장이 새롭게 발령받으면 통상 팀의 업무분장을 한 번쯤은 들여다보기 마련이다. 수남 씨가 아무리 해당 팀에서 계속 근무를 했다지만, 막상 옆에 있는 동료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세히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팀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업무를 조정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이건 그냥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이 인사평가와 연간 계획을 세우면서 어지러워진 팀 분위기를 조각조각내어 갈등의 한복판으로 던져버릴 줄 수남 씨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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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한 업무 분장

“현재 팀원 여러분의 직급과 역할을 감안해서, 올 한 해 업무 목표에 맞게 현재 각자 맡고 있는 업무를 어떻게 조정할지 새롭게 정리해 봅시다."


수남 씨의 말이 끝나기가 회의실 공기가 급속히 싸늘해졌다. 처음엔 서로 눈치만 보며 말을 아끼던 팀원들은 회의가 진행될수록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건 제 일이 아니에요. 원래 A 씨가 하던 거잖아요!"

"아닙니다. 이 일은 원래 B 씨의 역할이었고, B 씨가 맡은 업무의 연장선입니다. 현재 제가 하고 있는 건 처음부터 임시로 맡은 것뿐입니다!!"

"언제까지 제가 이 일을 해야 하나요? 충분히 오래 하지 않았나요? 저도 이제 다른 일이 하고 싶어요."

"전 지금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제 제 일 중 일부는 다른 사람이 맡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팀원들은 현재 본인이 맡은 업무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어렵고, 귀찮고 또 힘든 일에선 손을 떼고 싶은 욕심을 감추지 않고 날카롭게 드러냈다. 평소 서로 배려하고 이해해 주던 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팀 내 갈등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남 씨는 어떻게든 조율을 하려 했지만, 팀원들은 벼랑 끝에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나마 수남 씨는 이 팀에서 오래 근무했기 때문에 서로 맞지 않으려는 업무와 상관관계가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결국 조율이 되지 못한 업무들에 대해서는 이러한 수남 씨의 판단을 근거로 관련 업무 담당자에게 업무를 맡도록 '지시'를 하면서 회의는 일단락되었다. 물론 수남 씨가 지시를 했다고 해서 해당 업무를 맡은 팀원이 만족하거나 수긍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로 생긴 일은 모두 남의 일

"무슨 소리예요? 이건 분명 B 씨 업무였죠! 전 이미 바빠 죽겠어요."

"제가 지금 하는 일도 벅찬데, 새로 추가되는 건 못 해요!"


두 번째 팀 내 업무분장을 위한 회의는 역시나...... 회의 시작 후 10분이 되기도 전에 높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회사 업무는 반복적인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롭게 생기거나 변화하는 업무가 더 많다고 봐야 한다. 수남 씨의 팀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의 올해 목표와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추진 계획에 따라 수남 씨 팀 역시 새로운 역할과 업무가 부여되었다. 수남 씨는 해당 업무를 담당할 팀원들을 지정하기 전 팀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회의를 열었지만, 회의 분위기는 수남 씨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었다.


‘이건... 분명히 업무 분장 회의인데, 왜 갑자기 법정 공방이 되어가는 걸까?’

팀원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업무를 맡지 않으려 애를 썼고 그게 아니면 더 이상 업무를 맡을 수 없다며 배 째라는 식으로 나서기도 했다. 수남 씨는 각자 맡은 업무의 연계성과 새롭게 발생한 일을 진행하기 위해 각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회의가 되길 기대했건만, 현실은 그 업무가 자신의 업무가 아닌 이유를 치열하게 다투는 공방의 장이 되어 버렸다. 결국 새로운 업무에 대한 업무분장 회의 역시 수남 씨의 판단에 따른 '지시'를 하면서 마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새로 업무를 맡게 된 팀원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고, 왠지 알 수 없는 미안함에 수남 씨 역시 그 팀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팀장님 저 도저히 못하겠어요"

팀 내 업무분장을 나눈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여직원 한 명이 수남 씨를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은 도저히 해당 업무를 할 자신이 없으니 다른 업무로 바꿔달라고 요구해 왔다. 차라리 대들듯이 그런 말을 했다면 수남 씨 역시 강하게 거절했겠지만, 수남 씨 앞에서 의기소침하게 앉아 눈물을 흘리는 팀원을 보면서 수남 씨는 생각해 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 때는 몰랐는데요, 생각해 보니 그건 정말 제 능력 밖인 것 같아요."

“팀장님, 저 너무 힘들어요”

눈물을 글썽거리며 스스로를 능력이 없다는 데 팀장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는가?


그게 계기가 되었을까? 그 다음날 또 다른 직원이 찾아와 이야기했다.

"팀장님, 회의에서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새로 맡기로 한 업무는 제가 기존 업무와 병행하기엔 너무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그건 팀장님께서 다시 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단 저는 해당 업무를 맡을 여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다들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는 OO님이 해당 업무를 맡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그럼 전 이 팀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당당하고(수남 씨 입장에서는 당돌하고), 명확한(수남 씨 입장에선 뻔뻔한) 요구에 수남 씨는 말을 아꼈다. 새로운 업무를 맡으라고 했더니, 그만둔다고 팀장을 협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다음 날 수남 씨 메일로 장문의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팀장님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한 편지는 결국 본인은 지금 일이 너무 많기에 새로운 업무를 맡을 수 없고, 기존에 하던 업무 역시 현재 너무 과도하니 조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수남 씨는 머리를 싸매며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수남 씨 흑화하다.

수남 씨는 팀 업무를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팀원들에게 맡겨두고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으로 업무 결과만 확인했다면, 합리적인 업무분장을 위해선 해당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고 얼마큼의 시간이 소요되는지 등을 세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관찰을 바탕으로 팀원들과의 의견 조율을 위한 개인 면담을 시작했다. “왜 이 업무를 맡기 어려운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제가 조정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면담의 내용은 언제나 비슷했다. 결국 각자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본인은 힘든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팀장님이 정해주시면 따르겠지만......"이라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기나긴 면담 끝에 수남 씨는 단호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직접 업무를 나누다 보니 본인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수남 씨가 백지에서 팀을 꾸린다면 일단 회사 규정에 근거하여 업무를 나누고, 팀원의 직급 그리고 역할에 따라 업무를 부여했을 것이다. 거기에 팀원의 역량과 성격 등을 고려해서 해당 팀원에게 적합한 업무를 부여한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그런데 팀원들과의 인간적인 관계, 기존에 일하던 관습 등에 매몰되어 기본적인 것들을 놓친 채 팀원들에게 휘둘리고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팀 내 업무분장이 혼란의 도가니가 된 것은 팀원의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수남 씨의 우유부단함과 흐리멍텅한 태도 때문이었던 것이다.

만일 이런 명확한 기준으로 업무를 나누었는데 팀원이 이탈하거나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럼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모든 팀원에게 잘해주고 모든 팀원을 끌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그랬는데 역할을 잘한다면? 그럼 그 직원은 그에 대해 보상해 주고 육성하여 성장경로를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팀장의 역할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수남 씨는 팀장의 역할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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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호함. 절반의 성공.

수남 씨의 단호한 결정은 성공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일단 수남 씨의 결정은 팀원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수남 씨는 규정에 근거하거나 합리적인 반박이 아니면 묵살하였다. 또한 합리적인 의견이라도 일단은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 월 단위로 진행사항을 체크하며 조정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러니까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수남 씨의 태도 변화는 팀원들의 뒤에서의 수군거림으로 이어졌지만 수남 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 팀원들의 뒷 담화를 얻은 대신 팀의 시스템의 안정성엔 한 발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팀원이 업무 스트레스로 뻗어버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작스레 팀원이 결근하였고, 결근한 팀원에게서 온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업무가 너무 과중해 몸살이 난 것 같아요. 잠시 쉬겠습니다.”

하지만 수남 씨는 그 팀원의 업무 분장을 조정해 주는 대신 왜 그렇게 업무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해당 팀원이 업무 프로세스를 수정할 부분을 지시했고, 타 부서와 협의가 필요한 부분은 함께 협의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업무 프로세스 수정 지시했던 부분도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계속 팔로우업 하면서 진행사항을 체크하여 결국 바꾸도록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런 과정은 수남 씨에게도 힘든 과정이었지만, 팀원들 입장에선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었다. 팀장이 작정하고 업무를 어떻게 하는지 수시로 들여다 보고, 수치화하고, 계속 미세하게 조정한다? 팀원 입장에선 불편할 뿐만 아니라 미치고 팔짝 뛸 일인 셈이다. (사실 이런 부분도 어느 정도 의도한 부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불도저 같은 팀장의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 팀원들은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팀 업무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물론 실제로 그만둔 팀원도 있었고, 그 팀원이 갑자기 그만두면서 다른 팀원들이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몇 개월간 고생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수남 씨는 그 과정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팀원들의 업무를 매월 조정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챙기며 힘든 시간을 헤쳐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업무분장에 적응하기 시작한 팀원들도 갑작스럽게 퇴사하면서 본인들에게 엿을 먹인 기존 팀원을 욕하면서 팀 분위기는 오히려 한 마음이 되어 가는 듯했다. 역시 내환을 다스리기 위해선 외부의 적이 필요한 법이다.




팀 내 업무분장은 팀장이 되고 난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팀원은 연차가 쌓이고, 성장하며 능력의 차이를 보인다. 회사는 매년 목표가 바뀌고 새로운 업무가 부여된다. 그런데 팀 내 업무분장은 매년 그대로다? 그럴 수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업무분장 조정은 쉬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지언정 업무 분장의 방향성에 있어서 수남 씨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 방향성을 세우고 책임지는 것은 결국 팀장인 수남 씨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신 팀원의 회사 내에서의 역할과 성장 그리고 성향에 맞춰 업무를 나누기 위하여 팀원들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하고 관심을 쏟으려 애를 쓰고자 한다. 왜냐하면 바뀐 업무분장이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이 되면 팀원들은 이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더욱 업무를 열심히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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