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 정규직 심사 앞에선... 작아집니다.

너희가 직린이냐? 나도 팀장은 처음이다!

by 들른이


#1. 사무실에서

'옥자'와 '방실'사원은 요즘따라 일하는 중 팀장의 눈치를 보게 된다. 팀장이 부르기라도 하면 왠지 행실도 평소보다 신경을 쓰게 되고, 실수는 한 것이 없는지 되뇌게 된다. 애써 주변에는 티를 안 내려 하지만(어디까지나 본인들 생각에..) 정규직 전환 심사가 진행 중이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새다.


(옥자) "(작은 목소리로) 요즘 팀장님이 우리한테 자꾸 말 거시고 신경 쓰시는 것 같지 않아?"

(방실) "맞아. 뭔가 신경 써주는 느낌? 아무래도 정규직 전환 심사 때문인 것 같지?"

(옥자) "그러게....."

(방실) "저번 회의 때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잖아? 이건 해주신다는 거 아냐?"

(옥자) "글쎄...... 그게 그렇게 봐야 하나? 조금 애매하지 않나?"

(방실) "그래도 평소 아닌 건 칼같이 아니라고 하는 편인데 이번엔 꽤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잖아."

(옥자) "글쎄 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게 긍정적인 신호인 거야, 아닌 거야?"


마침 수남 팀장이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다가 옥자와 방실 사원을 힐끗 바라본다. 옥자와 방실 사원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지만 뒤통수가 왠지 어른거려 도통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수남 팀장은 조용히 한숨을 내뱉는다.



#2. 팀장의 고민

수남 팀장은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도대체 저 두 사람의 정규직 전환 심사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팀장 보직받은 지 5개월 여 밖에 되지 않은 초보 팀장 수남 씨의 마음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일을 못하느냐? 그건 아니다. 옥자 사원은 다른 대기업에서 1년 여 근무 경험이 있어 즉시 전력화가 되어 본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었고, 방실 사원 역시 첫 직장생활인 만큼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업무에 임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현재 자리에서 충분히 제 역할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막상 엄청 뛰어나진 않다는 것이었다. 과연 저 두 사람을 정규직 전환까지 해서 계속 끌고 갈 인재일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모자라진 않지만 충분하지 않은 두 사람의 업무 결과물과 거기서 막연히 추정되는 포텐셜 만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단 정규직 전환을 하게 되면 이제 두 사람이 현재 맡은 업무를 책임지고 끌고 나갈 뿐만 아니라, 향후에는 이 팀에서 그리고 이 회사에서 진급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과연 저 두 사람이 그런 인재인지 판단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도대체 사원이 1년 여 정도 일하는 모습만 보고 어떻게 그런 것을 다 판단하고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반면에 요즘 마음 맡고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며 성실히 일하는 직원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금과옥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옥자, 방실 두 사람 모두 20대 중반의 젊은 사원이지만 흔히 말하는 MZ 같은 성향을 드러내며 팀장을 당황스럽게 하거나, 뾰족한 돌출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넉살 좋게 팀원들 그리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며 일도 열심히 하는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또 정규직 전환은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부대끼며 일한 정도 있어 마음이 기울기도 하고......



#3. 인사팀 미팅

인사팀과 전환 심사 미팅에서 수남 팀장은 신중하게 두 직원의 성과와 향후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고, 결국 두 사람 모두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인사 팀장) "두 사람 다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요? 팀장님, 그건 좀 무리가 아닐까요?"

(수남 팀장) "네? 아니 왜...... 방금 설명드렸듯이 팀 내 역할 잘하고 있고, 향후 맡을 업무도 명확합니다."

(인사 팀장) "그렇기는 한데 요즘 정규직 전환을 당연시해 주는 분위기도 아니고, 가급적 저희도 정규직 전환은 아주 제한적으로 진행한다는 지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두 사람을 다 해주게 되면 다른 부서에서 반발도 예상되고, 별로 좋은 선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수남팀장은 인사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어이가 없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말문을 띄지 못했다.


(수남 팀장) "아니 그럼 심사를 왜 합니까? 그냥 원칙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안 해주면 되지?"

(인사 팀장) "아니 또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씀하실 건 아니고요. 무조건 안 해준다기보단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지양한다는 말씀이죠."

(수남 팀장) "저희는 필요합니다. 솔직히 지금 이 두 사람 전환 안 해주면 머지않아 나가야 하는데 그때 새롭게 바로 채용해 주실 것도 아니잖아요. 저희 사람 없으면 업무 멈춥니다. 저희 부서 업무 멈추면 대안이 없어요. 아시잖아요."

(인사 팀장) "(한숨을 내쉬며) 하...... 일단 해당 부분은 담당 임원분 보고도 해야 하고 하니 다음 미팅 때 다시 이야기하시죠. 아무튼 두 사람 다 심사를 신청하신다고 해서 전환이 무조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수남 팀장은 미완의 회의 결과에 찝찝하고 복잡한 마음을 안고 뒤돌아 나왔다. 그런 수남 팀장의 뒤통수에 대고 인사팀장이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그리고 그 말은 수남 팀장의 마음을 흔들었고, 수남 팀장은 그런 자기 자신이 왠지 싫었다.


(인사 팀장) "그리고 아직 1년 정도밖에 안 지났잖아요. 이번엔 그냥 넘어가고 2년째 됐을 때 전환 심사해서 그때도 꼭 필요하시면 그때 가서 전환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4. 직원 면담

전환 심사의 일환으로 수남 씨는 옥자와 방실 사원을 불러 개별 면담을 진행하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고 답했지만 사실 면담은 공허했다. 어떠한 확답도 주지 못하는 팀장의 질문은 겉돌았고, 정규직 전환이 되리란 기대에 잔뜩 부푼 사원의 눈빛은 마주 쳐다보기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형식적인 면담의 마지막 수남 팀장은 인사팀과의 미팅을 떠올리며 넌지시 이야기했다.


(수남 팀장) "(조심스럽게)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 될지 안될지는 아직 알 수 없어."


그 순간 옥자와 방실 사원의 표정에는 실망과 당황과 어이없음이 혼재된 미묘한 불편함이 퍼져나갔다.


(옥자/방실) "저희, 정말 열심히 했는데요…"

"얼마나 기대했는데요…"

"저희 안 되나요?"

(수남 팀장) "아니 아직 모른다고, 최종 결과는 나도 알 수가 없다고. 너무 속단하지 말자는 뜻이야."

(옥자/방실) "저번에는 될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저희는 되는 걸로 생각했는데…"

(수남 팀장) "아니~~ 내가 언제 된다고 이야기했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노력해 보자는 의미였지."

(옥자/방실) "아, 뭐예요~~~"

"아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도대체 이건 언제 끝나는 거예요"

(수남 팀장) "아니~아니~ 뭔가 좀 의도가 잘못 전달된 것 같은데. 일단 좀 기다려 보자. 조급해 말고."

"응? 알았지?"


수남 팀장은 본인의 말 한마디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두 사람을 보면서 괜스레 두 사람에게 죄인이 된 것 같아 곤란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수남 씨는 앞으로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5. 다면 평가

수남 팀장은 최종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혼자서는 도저히 확신이 들지 않아 주변 동료의 평가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에 함께 업무를 하는 선임 두 사람을 따로 조용히 불러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그리고 두 선임 팀원의 의견은 수남 팀장의 기대완 달리 사뭇 부정적이었다.


(익명 A) "잘해요. 잘하는데 1년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익명 B) "옥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방실은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내심 '아니 그럼 이제 겨우 1년 막 지난 사원이 일을 잘하면 얼마나 잘하길 기대한다는 거야?'라는 반감이 들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그리고 다면 평가로 오히려 혼란스러운 생각을 붙잡고 자리에 돌아오는 데 문득 수남 팀장의 눈에 방실 사원의 업무 실수가 눈에 띄었다.


(수남) "너 이거 왜 이렇게 했니?."

(방실) "네? 아... 그게... 잘못... 실수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수남 팀장의 말은 괜히 뾰족했고, 방실 사원은 사색이 되어 어찌할 줄 몰랐다. 이런 시기에 이렇게 실수를 하다니. 수남 팀장의 가슴속에 안타까움인지 실망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며 괜스레 열불이 뻗친다. 정말 이 친구는 아직인 건가? 정말 둘 중 하나만? 수남 씨의 머릿속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download.jpeg


#6. 임원 보고

며칠 후 수남 팀장은 담당 임원의 부름을 받았다. 역시 예상대로 정직원 전환 심사 건 때문이었다.


(사업부장) "둘 다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이게 맞을까?"

"본인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게 정말 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인지......"

"인선이라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바......"

(수남 팀장) "어버버...... 어버버버...... 어버... 어버... 어버버"


기품 있는 말 들 사이사이 숨겨진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 들이 수남 씨를 옥죄어 온다. 담당 임원의 뾰족한 질문에 수남 팀장은 잔뜩 긴장하여 본인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그때 수남 팀장이 확신한 것은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정규직 전환은 이대로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수남 팀장) '미안하다.. 두 사람...'



#7. 심사 결과

그래서 두 사람의 정규직 전환 심사 결과는?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정규직 전환에 성공하였다. 두 사람은 기뻐했고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열심히 일을 하며 정규직 전환을 선택했던 수남 팀장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있다.


download (1).jpeg


사실 두 사람 정규직 전환은 무산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임원 보고 이후 심신이 지쳐 사무실 밖에서 벤치에 앉아 두 사람에게 올해는 어렵고 내년에 다시 심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찰나 문득 수남 팀장은 본질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정말 이 두 사람을 정규직을 해주고 싶은가? 그렇다'

'왜? 지금 이 두 사람이 필요하니까.'

'이 두 사람이 부족한가? 아니 내 생각엔 충분하다. 모자란 건 가르칠만하다.'

'두 사람이 정규직이 안되면 힘든 사람은 누구? 팀장 자신이다.'

'그럼 이걸 인사팀이나 담당 임원 뜻에 따르는 게 맞는 건가?............ 아닐지도?'


상황에 치여 이리저리 방황했을 땐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이 두 사람이 정규직 전환이 무산되어 일을 그만두거나 대충 하면 정작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수남 팀장 자신이다. 일을 제대로 안 하거나 사고가 나면 결국 수습하고 책임지는 것은 수남 팀장이다. 두 사람이 그만둔다고 인사팀이 채용을 바로 해주나?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공석이 길어지면 결국 수남 팀장을 비롯해 남은 팀원들이 고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인사팀이나 담당 임원이나 모두 회사의 정책에 입각하여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막상 수남 팀장의 입장을 고려하거나 수남 팀장의 팀의 역할과 애로사항을 감안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수남 팀장의 입장을 대변하고 본인의 팀의 어려움을 설득하고 헤쳐나갈 책임은 수남 팀장에게 오롯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는 않는다. 수남 팀장 본인의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본능적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수남 팀장은 본인의 직감을 믿고 고집을 부리기로 했다. 인사팀에는 무조건 필요하다. 정규직 안되면 바로 채용해야 한다. 이것도 안되면 우리 팀 업무 멈춘다며 강수를 두었고, 온갖 회유와 협박은 양 쪽 귀로 흘려 들었다. 담당 임원에게도 두 직원 꼭 필요합니다. 잘합니다. 잘 육성해 보겠습니다.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애걸복걸에 가까운 설득을 했다. 그럼에 시큰둥한 임원의 반응이 영 석연치 않아(심사 최종 결정 권한은 임원에게 있기에...) 장문의 이메일로 두 직원의 전환 필요성을 논리적이진 못해도 질서 정연하게 정리하여 보내기도 했다. 그런 수남 팀장의 노력이 통했는지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정규직 전환에 성공하였다.


(옥자) "팀장님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

(방실) "팀장님 그동안 말씀이 없어서 저희 너무 가슴 졸였잖아요. 감사해요."

(수남) "됐고, 소란 떨지 말고 어서 가서 일해라. 일."

'(속으로) 나도 가슴 졸였다. 에이고...'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일을 겪으며 수남 팀장도 조금은 팀장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았다. 팀장의 말의 무게를 깨달았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덴 설명이 꼭 답은 아니고 어느 땐 기다림과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 때도 있는 법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팀장은 가끔은 본인의 생각을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