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속구간

느닷없이 찾아온 형의 죽음 - 2

by 들른이

무관심


형과 은광의 관계를 단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이 무색하게 장례기간 내내 은광은 미처 이해하지 못한 슬픔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와 울컥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평생 무심했던 아니 사실은 서로 힐난하고 무시했던 형제였다. 가끔 형이 죽어도 슬플 것 같진 않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닥친 현실에 어찌 이리도 가슴에 상처가 깊이 패이는 것인지 은광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은광의 머리와 가슴에 들어찬 멍은 한층 시커멓게 물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은광은 회색빛으로 빛바래져 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퍼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무너지는 어머니의 모습에 혹여나 어머니마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은광의 관심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어머니에게로 오롯이 향해 있었다. 은광은 어머니가 이토록 아이처럼 울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작고 주름진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은 채 오도 가도 못하는 망부석처럼 서서 오열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은광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막상 은광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어머니를 혼자두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저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어드리고 어머니 스스로를 자책하는 말에는 괜한 생각하지 말라는 툴툴거림과 반론을 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데 어설픈 은광은 여전히 어머니의 뒤에서 어머니 스스로 이겨낼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은광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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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둘이 나란히 서서 형의 입관을 지켜보던 은광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평생의 무관심과 최근 며칠의 슬픔이 가슴속에서 요동치며 마지막으로 보는 형에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통곡을 하며 형의 얼굴을 눈에 담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왠지 지금 이 순간의 형의 모습을 눈에 담아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입관을 위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누워있는 형의 모습은 생각보다는 단정했다. 코와 턱에 비현실적으로 길게 자란 수염은 형이 꽤 오랜 시간을 혼자 보냈음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뚜렷한 턱선을 보면 나름대로 운동이라도 하면서 관리를 한 것 같았다. 그럴 거면 건강검진이라도 미리 받을 것이지. 형의 턱선을 보니 괜한 투정이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윗 입술과 콧 볼, 눈 아래 등 일부분이 조금씩 부패된 피부에서, 쓰러진 이후에도 며칠을 외롭게 방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형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은광은 내심 부인하고 싶었던 형의 고독사라는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에겐 이런 형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살며시 어머니를 뒤로 무르려던 은광의 눈에 비로소 어머니의 공허한 눈빛과 왜소해진 어깨가 들어왔다. 어머니의 주름진 눈은 눈물에 짓물러 형의 모습을 제대로 담지도 못하였다. 그저 작은 목소리로 형의 편안을 기도하고 계실 뿐이었다.


“이제 편히 쉬렴……”


거기엔 은광이 알던 언제나 단단한 버팀목 같던 어머니는 없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은 조금씩 어머니를 바스러트리고 있었고 어머니는 저항 없이 본인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제야 은광은 이제는 본인이 어머니를 챙기고 보듬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은광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치기 어림과 막연한 어리광도 함께 스러져 갔다. 은광은 왠지 이 순간 이후 본인의 삶의 방향이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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