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속구간

형의 장례식 - 1

by 들른이

가족의 장례식은 익숙해질 수가 없다.


1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식에 참석한 적은 있어도 직접 장례를 처음 치르는 것이다 보니 모든 것이 생소하고 어설펐다. 갑자기 장례지도사가 찾아와 치르는 몇 차례의 제사의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절을 하기 바빴다. 입관 시간에 조의를 온 지인과 이야기하느라 자리를 비웠다가 집안 어른들의 급한 부름에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기도 했었다. 제단에 올릴 꽃을 고르라고 해서 별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가,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을 초라하게 차렸다고 집안 어른에게 혼쭐이 나고 급하게 가장 꽃이 풍성한 제단으로 바꿨던 기억은 지금도 민망하게 마음속 한편에 남아있다.


그래도 한 번 장례를 치른 경험이 있어서일까? 형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은광은 조금은 익숙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10년이 다 된 기억이지만 이때쯤 무엇을 해야 하고, 장례지도사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은광만 자리한 초라한 장례식장에서 은광은 바쁘게 움직이며 형의 영정사진을 챙기고 제단을 차리고 손님 맞을 음식과 각종 비품을 챙기는 등 장례식을 하나씩 준비했다.

그것은 이제 오롯이 은광의 책임이었다.


장례식.png



단순히 장례를 준비하고 치르는 것 외에도 예상치 못한 문제들 역시 은광의 몫이었다.


“아무도 부르고 싶지 않다. 그냥 우리 둘이 조용히 치르자”


형의 영정 사진을 망부석처럼 바라보던 어머니의 예상치 못한 고집이었다. 은광은 어머니의 상식 밖의 요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며 어머니의 주장을 일축했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그러고 싶어요? 그럼 그래요.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잠시 말을 고르던 은광은 그게 어떤 말이든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는 그런 은광의 대답에 별 대답 없이 얕은 한숨만 내쉬며 형의 영정 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바람은 무위에 그쳤다. 소시을 들은 어머니 형제자매 분들이 장례식장으로 눈물을 흘리며 뛰어들다시피 들어섰기 때문이다. 은광이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오는데 2시간 정도가 걸려 어머니를 혼자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머니와 가까이 사시는 이모에게 연락을 했고, 이모를 통해 외가댁 전체에 소식이 알려졌던 것이다.

삼촌과 이모들은 일단 어머니가 괜찮은지부터 살피고는 어머니 곁에 딱 붙어서 어머니를 위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은광과 둘이서만 있자던 어머니는 막상 형제자매들을 보니 어색함과 반가움이 교차되는 것 같았다. 망부석처럼 입을 다물고 있던 어머니도 삼촌과 이모의 질문공세에 기운 없는 목소리지만 조금씩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삼촌과 이모들 그리고 외가 쪽 식구들은 번갈아 가며 장례를 마칠 때까지 장례식장에 어머니와 은광만 남게 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덕에 은광은 장례식을 힘들지 않게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상황 혹에서도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말을 할 힘조차 잃은 사람처럼 삼촌과 이모 사이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듣거나 미미하게 고객을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례식은 싫다는 어머니의 고집에 은광은 외가댁 식구들 외에는 직장 동료를 부르지 않기로 하였다. 어쩌면 어머니는 직업도 친구도 없이 혼자 외롭게 떠난 형의 장례식에 은광의 직장 동료와 친구들이 왁자지껄 찾아오는 것을 형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형이 그런 모습을 봤다면 좋아했을까? 평소의 형의 성정이라면 싫다고 이야기하진 않았을 것 같지만 막상 질투하거나 속상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기에 은광 역시 회사엔 형의 장례식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장례 준비가 마무리가 되어 가는 싶을 때 장례지도사가 은광을 급히 찾았다. 그들은 고인의 가족들의 슬픔에 무뎌진 직장인의 말투로 발인 날 예약 가능한 화장터가 없다며 은광에게 어찌할 것인지를 물었다. 은광은 오히려 그들에게 어찌하면 좋을지를 묻고 싶었다. 무책임한 그들의 태도가 눈에 거슬리고 불만이 고개를 들었지만 지금 은광을 도와줄 사람들 역시 그들뿐인 것을 알기에 내색을 할 순 없었다. 한참의 논의 끝에 결국 화장터 예약을 위해 3일 장의 시작을 하루 미루어 다음 날부터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장례식이 미뤄지면서 은광은 일단 어머니를 모시고 은광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니는 그때도 본인의 집으로 혼자 돌아가겠다며 고집을 피웠지만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 은광의 완강한 반응에 못 이기는 척 은광을 따라나섰다.

은광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새벽처럼 낮은 고요함이 깔렸다. 어머니도 은광도 별다른 이야기 없이 창 밖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 사이를 간간히 어머니의 폐부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만이 채웠고, 그 소리는 은광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은광이 어머니의 신음을 되뇌이고 있을 때 어머니는 조심스레 은광에게 물었다.


“친가도 꼭 불러야 하나?”

"하...."

은광의 잎에선 한 숨이 깊이 흘러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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