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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Jun 04. 2019

[서평] 골든아워 / 이국종

우리 앞에 희생을 강요받는 삶이 주어진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희생과 인내가 강요됨에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음도 불확실하다면 그 삶을 지켜낼 수 았을까?

이국종 교수. 우리나라의 외상센터의 권위자이자 전문가, 그 정도로만 알았던 사람의 경험을 굳이 시간을 쪼개어 책으로 읽는다는 것은 의미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 잡게 된 이유는 주변에서의 이국종 교수에 대한 소문과 평판 때문이었다.

'실은 그 사람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더라.. 이런 이런 안 좋은 소문이 돌더라'

그런 뒷담화(?)를 듣다 보니 도대체 그런 사람이 이런 책은 왜 냈을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궁금증이 책을 읽은 이유였다. 내심 의료계의 뒷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음모론을 기대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삶의 기록을 한 장 한 장 따라가는 것이 지루하고 큰 감흥이 일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의 삶이 치열했고 존경받아 마땅했음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나일론 독자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내용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석해균 선장을 살리기 위한 과정이나 세월호 때의 이야기에서 조금 흥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실패와 고난의 기록은 불편했고 너무도 뻔하고 적나라한 행정관료와 조직 이기주의의 모습에 체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놓지 못했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그 사람의 삶의 궤적 자체로 어느새 위로받아버렸기 때문이다.

처음 한 질문을 조금 풀어서 다시 한다면 당신은 매일 같이 일분일초를 온 힘을 다 해 치열하게 살면서, 쉴 틈은 없고, 주변에서는 그 노력을 온전히 평가해주지 않은 채 오히려 오해와 비난이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삶을 살라고 하면 그런 삶을 선택할 것인가?

돈벌이는 나쁘진 않지만 지원이 미미해서 일을 하는 동안 계속 자신의 사비를 털어 넣어야 하기에 통장은 계속 말라가고, 조직 내에서도 자신의 본연의 역할과는 상관없이 관련된 모든 일을 떠 넘기고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런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만일 그 일이 자신이 진정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이라면, 좋아했던 일이라면, 그럼에도 그런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을까?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누구나 '노'라고 말할 만큼 위협적이고 장황하지만 사실은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대다수의 조직원들이 비슷한 고민과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일반적인 회사원들도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고되고 힘들어 못 버틸 것 같지만 결국 버티고 산다. 버티는 이유가 가지각색이지만 대안이 없거나 다른 선택을 할 용기가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회사원을 꿈꾸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결국 종착지는 회사원이었고 그 알량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매일 눈치 보며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 없이, 쉴 틈 없이, 일에 매여 이렇게 살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삶을 정말 치열하게 살아온 이국종 교수의 시간 그 자체만으로 대단해 보인다. 그가 얼마나 의료계에서 큰 업적을 남겼는지 또는 허울 좋은 포장이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적어도 그는 그렇게 버티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그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삶의 결과물이 개인의 영달보다는 사회적으로 의미를 지니기에 그는 위인이 되고 영웅이 되고 존경받는 선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투신한 이유가 개인의 영달보다는 사회적인 시스템을 만든다는 이타적인데 있었음만으로도 그는 귀감이 되는 존재일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겁니다.
목마른 사람. 두 마디의 말이 불러오는 바람이 씁쓸했다. 나는 내 목마름의 근원을 알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런 기갈과 허기를 느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목말라해야 하는지,


두 번째는 개인이 아무리 고군분투하여 신념과 생각을 관철시키려 해도 권력을 가진 이들과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조직 앞에서는 초라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하다 결국 좌절하는 모습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의 지난 임상경험을 옮겨 놓은 책 속에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하고 답답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절망하고 갈등하는 인간적인 이국종 교수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전문가로서의 교수로서의 모습보다 상처 받지만 굴하지 않고 버티며 밀고 나가는 조직원이자 한 사람의 모습만이 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면서 위로받기보다는 왠지 극복할 수 없는 벽을 보는 느낌이었고 그처럼 내 자신의 앞날조차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자꾸 실패를 반복하는 우리 네 모습을 투영할수록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우울감에 휩싸였다. 사방이 막힌 방에 칭칭 동여진 채 옴짝달싹 못하고 천천히 죽어가는 그런 막다른 절망이 마음을 조여 온다.

결국 그동안 모른 척했던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극복은 없이 그저 견디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고 왜지 모를 이 사회에 대한 체념과 막막함에 혀 끝이 개운하지 않다.

사뭇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일들이 결국은 국민들, 즉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이다.

누구나 잠재적인 수요자, 잠재적인 환자인 것을 상상해보면 그저 운과 바늘구멍 같은 기회가 없다면 회생할 가능성이 없음에 몸서리쳐진다.

결국 이야기의 끝에서조차 그렇게 버티고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며 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는 과정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며 조금은 내 삶의 절망을 위로받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고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보상이다.


책을 덮으니 새로운 화두가 남아 머릿속 울 맴돈다.

나는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내가 처한 현실 속에서 완벽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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