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바쁜 휴가 전 날
맘 편히 휴가 좀 보내주라 제발
내일은 즐거운 휴가의 시작~아기다리고 기다리던 1년에 한 번 있는 5일짜리 장기 휴가의 시작~
그리고 오늘은...... 최고로 바쁜 Hell Day!!
일을 하다 보면 한 번씩 숨이 꼴딱 꼴딱 넘어갈 것처럼 바쁜 날이 있다. 아니면 머피의 법칙처럼 일이 꼬이거나 예측하지 못한 일이 갑작스레 생겨 모든 업무 스케줄이 꼬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한 번에 터지는 날이 바로 휴가 전 날, 오늘이다.
휴가 전 날은 일단 업무 집중도가 최고로 올라온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컨디션이 아무리 안 졸아도 강제로라도 최고로 끌어올려야 한다. 왜냐하면 5일간의 부재 동안 벌어질 모든 업무를 미리 조치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휴가 내내 업무 전화에 시달려야 할 터이니 말이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절대 놓쳐선 안 될 것이 하나 있는 데 바로 팀장은 물론이고 담당 임원에게 휴가 신고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맡은 업무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단속을 해두지 않으면 휴가 중간에 불쑥불쑥 전화가 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너는 이렇게 바쁠 때 꼭 휴가를 가야 했냐'며 타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불똥이 팀장이나 다른 직원한테 튀어서 괜히 업무 분위기를 흐릴 수가 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내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직장인에겐 정말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특히 부정적인 이야기라면 말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내 휴가 내가 간다는 데 굳이 그렇게까지 눈치를 봐야 하냐'며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휴가를 쓰는 것은 권리지만 자신이 휴가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회사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업무던 직장 분위기던 직장동료던 말이다.
휴가 전 날 제일 열폭하는 순간은 바로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이것 좀 오늘까지 해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것이다. 난 내일부터 휴가라 일주일을 자리에 없는 데 어떻게 보면 고작 일주일인데 굳이 오늘까지 해 오라는 건 이건 꼬장이고 무배려이며 먹이는 게 틀림없다. 게다가 그 업무가 정말 바쁜 일도 아니고 굳이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인데 말이다. 왜 그러냔 말이다. 휴가 간다 그러면 배알이 꼴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 속이 뒤집어지고 스팀 올라서 받아치는 말이 목젖까지 바짝바짝 치밀어 올라온다. 그렇지만 초인적인 인내로 참는다. 직장인이니까.
정말 나 밖에 할 사람이 없고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면 개인적으로는 휴가 기간에도 짬을 내서 처리할 의향도 있다. 실제로도 그렇게 한 적도 있고 말이다. 인생 살면서 그 정도 유드리는 부릴 줄 안다. 그러니까 휴가 가는 사람 맘 좀 편하게 좀 해주라. 제발.
참고로 개인적으로 철저하게 지키는 원칙은 휴가를 쓰고 출근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오히려 조직 분위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인데 이 상황을 잘 설명하는 예를 들면 예전에 프랑스로 이민을 간 한국인이 자꾸 야근을 하자 사장이 제재를 가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오랜 투쟁 끝에 쌓아 올린 문화를 당신이 망치고 있다며, 당신은 그저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다른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조직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최소한 휴가를 쓰고 출근을 하지는 않으며 주어진 휴가도 꼭 쓰는 편이다. 단 한 가지, 휴가 기간 동안 나의 부재를 회사가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휴가 전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비단 윗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꼭 업무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는 옆 부서 아무개는 더 하다. 휴가 간다니 당장 의견을 달라는 둥, 회신을 달라는 둥, 작업을 해서 달라는 둥 아주 생난리다. 그렇게 바쁜 거면 진작 이야기하고 협조를 구하고 일정을 정하던가. 가만히 있다가 휴가 간다니 찾아와서 오늘까지 안 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난리 치는 것을 보면 그래 너 휴가 때 보자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솔직히 자기가 업무를 챙기지도 않았으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지 이제 와서 안하무인 구는 꼴을 보면 능력 없이 관계로 일을 하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자기 일이고 나는 협조자일 뿐인데 내가 없다고 일이 진행이 안된다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다른 방법을 찾든 대체자를 찾든 팀장이랑 이야기 하든 양해를 구하고 휴가 때 통화를 하든 방법은 많건만 한다는 말이 오늘까지 답을 달라니 누가 보면 지가 상급자인 줄 알겠다. 정말 예의 없고 눈치 없는 것들은 다 꺼져 버렸으면 좋겠다.
밤 10시, 우여곡절 끝에 휴가 전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했다. 협조할 건 협조하고, 미룰 건 미루고, 조치할 건 조치했다. 그럼에도 휴가 중에 통화를 해야 하고 메일을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남은 걸 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난다. 휴가 기간 중에 일정을 놓치지 않도록 일정표에 넣고 알람을 설정하고 나서야 퇴근을 한다.
주말 포함 총 7일간의 휴식 기간, 즐겁게 시작해야 하지만 아마도 내일은 오후까지 늘어져 잠만 잘 것 같다. 행여나 휴가 동안 일이 터지지는 말기를. 작은 불안을 품에 안고 드디어 휴가를 간다.
열심히 일했다. 좀 떠나게 둬라. 이 매너 없는 사람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