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보면 가끔씩 (주로 남자가 그렇지만) 이유 없는 경쟁심리가 발동하는 경우가 있다. 깜빡이 없이 무리하게 끼어든다거나, 지연 운전을 하거나, 반대로 칼치기로 추월을 하는 경우 등 운전자를 불편하게 하는 행위로 인해 한 번 꼭지가 돌 때 주로 발생한다. 그때 운전자는 모든 신경이 저 차를 어떻게든 제치고 앞서 나가겠다는 데 쏠리면서 운전을 하드코어 모드로 하기 시작한다. 차가 별로 없는 도로에서야 휙 속도를 내서 추월하면 그만이지만 시내나 좁은 국도에선 이게 참 용이치가 않다. 그래도 운전자들은 한 번 꽂힌 이상 포기하지 않고 칼치기, 1차선 역주행, 과속 등의 다양한 스킬을 시전 하면서 한 발이라도 앞서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럴 때면 왠지 상대방 운전자도 이미 나의 상태를 알고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틈을 주지 않는다. 이게 사람을 더 열받게 한다. 이 정도 되면 운전자는 약간 이성이 마비된 듯 앞서 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과속단속 알람은 사뿐히 무시해 주며(들리지도 않는다) 차에 혼자 타고 있는지 가족이 함께 타고 있는지 상사가 함께 타고 있는지 조차 흐릿해진다. 그리고 그런 무리수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음주운전, 졸음운전과 함께 난폭운전이 위험한 이유가 있음이다.
그 와중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저 앞에 좌측 2차선 갈림길이 나오고 상대방이 좌측에 본인이 우측에 있다. 껴주지만 않는다면 본인이 앞서 나갈 수 있는 상황이다. 기쁜 마음에 맘껏 액셀을 밟으며 절대 껴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옆 차에 바싹 붙는다. 아! 그런데 옆 차는 그대로 좌측 갈림길로 그냥 쑥 빠져나가는 것 아닌가. 갑자기 경쟁 상대를 잃어버리고 나니 지금 어딘가를 가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허망해진다. 분명 목적지가 있었음에도 잠시 망각한 채 순간의 경쟁에 집중에 어디쯤 와 있는지 어떻게 목적지를 향해 가는지 모두 잊힌 채 머릿속이 하얘진다. 여기까지 어떻게 어떤 길을 따라왔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허한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의지한 채 공허히 허우적허우적 팔을 움직일 뿐이다. 앞 차는 그저 자신이 갈 길을 갔을 뿐인데 혼자 경쟁심에 미친놈처럼 따라붙은 셈이다. 무의미한 레이스의 허무한 결말이다.
비단 운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그저 우연히 잠시 같은 길을 가고 있을 뿐인 옆사람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경계하고 질시하며 스스로를 날카로운 낭떠러지를 향해 채찍질해 댄다. 아닌 것 같은가? 학창 시절엔 대학 진학을 이유로 전교 학생을 경쟁 상대로 여기게 강요당했고, 회사에선 인사평가와 진급을 이유로 동료를 경쟁 상대로 여기게 몰린다. 자영업자들은 옆 가게와 손님을 차지하기 위해 치킨런게임을 하며 제 살 깎아먹기에 열을 올린다. 기업은 또 어떤가? 정치는 또 어떤가? 온 사회가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고 이기기 위한 경쟁 상대로 여기며 모두가 모두와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막상 뒤돌아 보면 그 시절을 경쟁에 몰려 치받이며 살았던 것이 아쉽고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정말 나의 경쟁상대였던가? 하는 후회가 고개를 든다. 살다 보니 이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 자식에겐 그렇게 살라고 할 자신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정답을 알 순 없다. 하지만 여기서 꼭 되새겼음 하는 것은 이것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딘가?'
따지고 보면 일단 목적지가 같은 사람이 경쟁 대상이다. 그런데 선착순이 아니라면, 어차피 그 목적지는 많은 사람이 거쳐갔고 거쳐갈 길이라면 도착의 선후는 중요치 않으니 경쟁이 필요 없다. 정말 경쟁이 필요한 순간은 여러 사람이 하나의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All or Nothing Game에 들어섰을 때뿐이 아닐까? 그런데 막상 이런 경쟁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거나 이겨내지 못하고 피폐해진 채 리타이어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모든 것을 경쟁의 논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사회는 정말 치열한 경쟁을 하고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진 않은 것이 아닐까? 경험해 본 사람을 알겠지만 이런 극도의 경쟁의 순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경쟁과는 많이 다르다. 정말 진이 빠질 만큼 영혼을 끌어모아 투쟁해야 한다. 그런데 매일 경쟁하는 우리에게 그런 순간은 정말 있었나? 그런 경쟁을 할 만큼 원하는 것이 있었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경쟁을 겪어보지 못한 이유는 정말 원하는 파이를 찾지 못한 경우가 참 많다. 목적 없는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직장이 그 사람 인생의 종착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공부를 노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열정의 방향성을 문제 삼고자 함이다.
본인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했다면 도착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가는 길을 면밀히 살피며 잘 기억하고 좋은 풍광을 눈에 담기도 하고 운전 중에 동승자를 챙기기도 하고 아내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리라. 사고가 생기면 잘 수습하고 다시 길을 잃지 말고 나아가야 하며 갑자기 길이 끊긴다면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목적지를 향해 가는 그 모든 과정이 그 사람을 성장시킬 수도 있고 깨달음을 줄 수도 있으리라. 본인이 본인의 운전에 집중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옆 차의 추월해 집중하느라 이 모든 과정과 여정을 놓친다면 과연 그렇게 도착한 목적지는 본인이 원했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출발할 때의 목적지를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며 견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만 집중을 하며 거기서 승리를 하기 위해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결과가 본인이 원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또 다른 길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목적지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고 가는 도중에 바뀌는 경우도 많다. 길을 잃기도 하고 헤매기도 한다. 단속에 걸려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목표의식과 집중이 필요하다.
주변에 성공한 사람을 잘 살펴보면 각자가 그 과정이 천차만별이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부분은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 노력과 그 과정은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이룬 것이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말이다. 도착지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그곳에 이르기까지 들인 노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인생은 가변적이고 예측 불허이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에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 길이 너무 가고 싶어 달리고 있다. 죽을힘을 다하진 않고 있지만 좀 더 치열하게 달려보려고 한다.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앞서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