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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r 09. 2020

직장인의 하루 5 - 어쩌다 보니 혼자

캔 맥주 그리고 만주 한 접시

퇴근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 속, 지친 심신으로는 기약 없이 밀려오는 무기력함을 견디기가 어렵다. 서성이는 발걸음은 도통 집으로 향할 줄 모른 채 어두운 거리를 빗나간다. 손 안에서 겉도는 휴대폰은 더 이상 닿을 곳이 없기에 숨죽인다. 우렁우렁한 마음은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취기(醉氣)를 찾는다.


결국 길가 편의점에 들러 비교적 저렴한 국산 캔맥주 하나를 고르고 나니 허기진 뱃속은 아직 저녁 식사 전임을 알린다. 마침 길 건너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어둔 거리를 밝히는 만두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평소라면 캔맥주보다도 비싼 만두 한 접시를 사 먹지 않을 터지만 오늘은 허전한 마음을 달랠 겸 작은 사치를 부려 본다.


캔맥주와 만두를 충동적으로 구매는 하면서도 막상 이것들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의례 집에서 먹어야 할 것 같지만 노부모가 어린아이들을 봐주고 있는 집 어디에도 우울감을 달래며 마음 편히 술 한잔과 함께 늘어질 공간은 없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기에 검은 비닐봉지를 덜렁거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돈다.


마침 빌라 사이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에 아무도 없기에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얼른 자리를 잡는다. 좁은 벤치에 대충 비닐을 풀고 왠지 오늘 저녁 사무치는 외로움에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켠다. 그러나 간절했던 맥주 한 모금의 청량감에 쓸려가는 갑갑한 가슴을 즐길 틈도 없이 퇴근 후 아이들을 씻기고 숙제를 봐주고 재워야 하는 과제에 대한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루틴 한 일상에서 이루어진 작은 일탈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벤치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결국 허겁지겁 맥주와 만두를 들이켠다.


아쉬움이 길게 남는 짧은 일탈을 뒤로하고 탄식 섞인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켜 돌아보니 벤치 위에 널브러진 텅 빈 맥주 캔과 만두 접시가 왠지 초라하고 흉물스럽다. 갈 곳을 찾지 못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인지 기구하다. 그럼에도 혈관을 타고 도는 옅은 취기와 빵빵한 윗배의 압력을 연료 삼아 약간의 의욕을 몸과 마음에 밀어 넣는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하소연할 곳이 없어 맥주와 만두로 꾹꾹 눌러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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