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시간 Nov 19. 2023

집안일 며칠 쉬었다고 수건이 없다니

역시나 이번 독감도 나를 거치고 지나갔다. 유치원 아이들이 슬슬 아프기 시작해 결석하면 나도 곧 그 전염병에 감염된다. 해마다 독감이니, 코로나니 하는 것들이 그냥 지나가지 않고 꼭 나를 들렀다 간다. 내가 아픈 것보다 내 아이가 아플까 봐 걱정이 되어 아이의 기침 소리 하나, 달라진 호흡 소리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항상 먼저 아픈 쪽은 나인 것 같다. 


나는 안방에서 생활하고 아이는 거실과 아이방에서 생활하며 내가 거실에 왔다 가면 소독하고 들어가고, 밥만 겨우 차려주며 지내기를 며칠. 다행스럽게도 아이에게 옮기지는 않고 잘 지나갔다고 안도하며 오랜만에 거실에 밀린 집안일을 하러 나왔다. 냉장고부터 열어보며 식재료를 점검하고 아이에게 저녁을 무얼 해주나 고민하다가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수건을 꺼내려했는데 맙소사 수건이 없다.


부랴부랴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린 다음 수건을 개켜 끝까지 수건을 쌓아놓고는 안도한다. 집안일 며칠 쉬었다고 수건이 없다니. 설거지가 쌓여있다거나, 청소가 덜 되어있다거나 하는 것까지는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사사로운 부분까지 나의 노동의 손길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게 갑자기 더 힘들어진다. 크지도 않은 59제곱미터의 집과 그 집에 사는 두 사람이 안정되게 굴러가기 위해서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덮어놓고 일시정지를 시키기에는 어차피 오늘의 나 아니면 내일의 내가 해야 하므로 내일의 내가 좀 더 편안할 수 있게 오늘의 내가 더 고생한다. 동동거리며 살기 싫은데 애를 키우면서 사는 삶에는 언제나 동동거림이 공존한다.


외출할 때도 마찬가지. 아이가 할 일을 일러두고 그 사이사이 나도 준비하고 아이의 준비상황을 또 점검하고를 반복하며 나가기 전 집안일을 해놓자면 벌써 내 안에 실이 팽팽해진다. 그 팽팽해진 실을 느슨하게 할 틈이 없이 외출을 한다. 그러다 아차차. 음식물쓰레기와 분리수거할 용품들을 챙긴다. 가방이며 쓰레기를 손가락 하나하나에 채워 들다가 다시 아차차. 마스크 해야지. 아이와 나의 마스크를 손목에 결고 다시 신발을 구겨 신고 잡아두고 있는 엘리베이터의 소리가 울리기 전에 겨우 안으로 들어간다. 혹여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봐 팔꿈치로 닫힘 버튼을 여러 차례 누르는 모습에서 다급함이 보인다. 겨우 차에 앉아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하라고 하고 네비가 켜지기도 전에 겨우 출발한다. 도착 예정시간 겨우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을 시간이다. 외출 전부터 머리에는 땀이 찬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학생의 플러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