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터인가 유치원에서 8시간은 최대한 감정적 소모를 하지 않고 보내기로 결심했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오전 4시간에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만 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러있었다. 바깥놀이는 아주 특별한 날에 안전교육과 다짐을 몇 번씩이나 한 이후에나 가능했고, 승패가 있는 게임 같은 건 아예 할 생각도 없었고, 급식지도는 안 한 지 오래됐다. 상식이 상식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학부모를 만난 이후부터이다. 지난 7-8년의 시간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그 학부모를 만나고 난 이후 2-3년간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잃어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한 수업의 교육적 의도를 아무리 설명해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냥 그 누구의 민원도 없이 아이들이 부담 없이 유치원에 오고 다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모두가 나에게 원하는 역할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옆반 선생님이 아이들을 문제행동을 걱정하여 학부모와 상담을 하고, 아이들과 활동한 사진을 보며 웃는 모습이 부러웠지만 이제 나는 그렇게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었다.
업무를 하는 오후 4시간 역시 내 이름이 명확하게 찍혀있는 일 외에는 모른척했다. 시야를 좁혀 일을 일로서 빠르게 처리하는데만 집중했고, 새로운 제안은 그 즉시 내 업무가 되어버릴 것을 알기에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연구학교와 연구 업무를 하는 것이 버거웠고, 이 일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빨리 내 의견을 포기하고 타인의 의견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일을 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웃는 일과 우는 일은 유치원 출근 전과 퇴근 후에만 가능했다. 유치원에 조금이라도 일찍 출근하는 게 싫어 주변을 배회하다 들어가기도 하고 퇴근 후 주차장에서 집까지 올라갈 기운이 없어 차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올라가기도 했다. 이런 내가 아이들의 졸업식에서 울다니.
학사모를 씌우고 졸업가운을 입히고 졸업식장에 입장을 할 때까지 괜찮았다. 씩씩하게 대답을 하며 졸업증서를 받을 때까지도 괜찮았는데 아이들이 졸업가를 부를 때쯤에는 내가 나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조금 더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열심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그 열심을 다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을 때 후회하나 보다.
해야 할 일만 머릿속에 가득 품은 채 하루하루 그 모든 것을 처리할 목적으로 다녔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보니 개중에 나에게 위안을 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침에 등원해서 자기가 있었던 일을 신기한 듯 쏟아내는 아이, 꽃이 필 무렵에는 매일 꽃을 들고 와 건네주는 아이, 순수함이 지워지지 않은 채 간직한 아이, 어떤 가정에서 자라야 저렇게 사랑이 가득한 채로 자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아이, 내가 말하는 내용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자기 것을 만드는 아이.
졸업가를 부르는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진심으로 미안했다. 한번 더 귀 기울어줄 걸, 아이들 각자가 원하는 게 뭔지 한 번 더 살펴볼걸... 왜 한 명의 학부모로 인해 이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보게 방치했을까.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학부모와 인사를 했다. 학부모님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고인 눈물이 이내 흐르는 모습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한없이 증폭되었다. 죄송했다. 죄송한 마음에 나도 거의 엉엉 울었다. 그렇게 몇몇 학부모님과 정말 부둥켜안고 울고 나자 다시는 이런 후회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사라는 직업이 내가 임용시험을 볼 때는 좋은 직업이었던 것 같은데 현재는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까지 들리는 걸 보면 직업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진 게 실감이 된다. 박봉에 여러 가지 속박되는 점도 많고 보람 밖에는 딱히 성취할 게 없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한 지금처럼 버텨내는 것에만 집중하면 더 큰 후회가 올 것을 알기에 다가오는 3월까지 충분히 쉬고 나를 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