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리뷰

삶과 죽음, 사랑의 감각 / 스포 有

by 은린


이 책을 읽으며 사무친 슬픔과 사랑의 애틋한 감정이 무수히 교차했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박정민 배우가 이 책의 추천사로 적은 문장이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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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한 사랑을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이야기가, 결국은 소외된, 절박한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였음을 책을 덮고 나서야 깨닫는다.



좀비가 등장하고, 결국 지구라는 터를 버리고 떠나버린 인류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이 재난에서 유독 슬프고 고통스러운 존재는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뿐이었다.



죽은 자도, 살아남은 자도 누구 하나 편히 행복해질 수 없는 세계.






1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학대 가정에서 온전한 보호와 사랑을 받지 못한 두 아이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구축하고, 결국은 서로를 놓지 못하게 하는 이 설정이 너무도 절절했다.



묵호에게 빌었다. 묵호만이 내 소원을 이뤄줄 수 있는 존재였다.

묵호야, 살 수 있지. 이번에도.



좀비가 되었음에도 옥주를 알아보는 묵호, 그리고 죽은 묵호의 곁에 어떻게든 붙어있으려는 옥주.



그냥 나랑 있는 것뿐이야.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는 거야. 네 탓이 아니야.

이번에도 그래. 네 탓이다. 네가 나를 놓아주지 않아서….



좀비는 기억하지 않는 존재라는 장르적 관습을 떠올리면, 이 설정은 명백히 낯설다.


그래서 묵호는 괴물이라기보다, 죽음 이후에도 사랑을 기억하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미 죽은 묵호에게, 또, 혹은 더 죽지 말라고.



1부를 읽으며 드라마 <해피니스>가 떠올랐다.


감염 이후에도 완전히 타자가 되지 않는 인물들, 기억과 관계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인간을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


<해피니스>는 끝내 함께 살아남는 이야기였고, 이 소설은 끝내 함께 죽음으로 향하며 “함께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



나는 핏빛 오로라 아래 있습니다. 내가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이 행성에서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이곳으로 올 거라면, 괴물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래도 오시겠습니까.






2부.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



2부에 들어서며 화자와 등장인물이 바뀐다. (적응하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소녀, 신체장애를 가진 두 어머니, 정신질환장애를 가진 노윤.


상상의 동물인 카카포와 앵무새.



인간의 수를 셀 때는 ‘이름 명名’을 쓴다. 그럼 이름만 지어주면 뭐든 ‘명’으로 세도 된다는 말인가?



이름과 수분류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읽다 보면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네 이름은 뭔데?

까먹었어. 내가 기억할 게 아닌 것 같아서.

내 이름도 말해줄까?

아니. 말해줘 봤자 까먹을 거야. 하지만 네 숨은 내가 기억하지. 인간. 경고 하나 하지. 조만간 재앙이 올 거야.


이 세계에서 보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이 들이닥친 순간에 네 존재를 알리는 데 써야지. 세상한테. 내가 여기에 있다고. 아무도 듣지 않는데, 제비가 살아야만 하는 그 순간에. 그럴 때 총을 사용하는 거야.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엄마에게 세상을 실어다 주는 마법사가 된 느낌이야. 내 입에 웅크린 세상이 있어. 사탕처럼 달콤하고, 단단하고, 깨지면 혀에 피를 내는, 달고 아픈 세상이.



여기서 사랑은 서로를 붙잡아야만 가능한 감정이 아니다.



어떤 세상에서든 우리를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어.

망가진 세상에서도 열심히, 쉬지 않고, 느리지만 확실한 숨을 쉬자. 사랑한다.



지켜보고, 거리 조절을 하고, 때로는 물러나는 책임의 형태로 사랑이 드러난다.



제비야, 헤어질 때를 놓쳐서는 안 돼. 놓아주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안개 속에 갇히게 되니까. 싫더라도 우리는 잔인하도록 선명한 세상을 바라봐야 해. 눈이 시려 눈물이 날 때는 손바닥으로 눈을 잠시 감싸주면서.






3부. 우리를 아십니까.



이 단편이 이 세계의 마무리라는 사실이 유독 반갑게 다가왔다.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우리를 아십니까」가 이 소설을 닫고 있다는 점이, 이미 읽었던 이야기임에도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예민함의 스위치가 남들보다 잘 작동하는 거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한국에서는 여자고, 세계에서는 아시아인이고, 성애로는 동성애고, 직업은 또 환자 걷는 것도 불안해하며 봐야 하는 간호사야. 그 정도의 예민한 스위치가 아니면 분명 뭐 하나는 말아먹었을걸? 그것도 대차게. 너를 살린 고마운 감각이라 치자.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비주류들의 삶을 증명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 숨 쉬는 존재는 죽음 앞에서는 그토록 평등해진다.

그게 얼마나 위안인가.


자연이 애써 덮은 평화로움 아래에 비참한 최후가 있다. 이미 한 겹의 지층이 되어버린 멸망이 있다.



약한 존재 앞에 더 약한 존재를 등장시킨다.


인간의 포획으로 바다를 잃었음에도, 결국은 인간의 도움으로 바다에 돌아가는 동물, 거북이 장풍이.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서 어떤 짓이든 하고 싶지 않았냐고.

돌아가는 것만 알아. 그리워만 했어. 복수는 뭔지 모르겠어. 복수심을 가지면 더 빠르게 갈 수 있었어?



거북이 장풍이는 인간 중심의 속도와 윤리를 고심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염치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종이 뭐냐고. 새 중에서도 비둘기나 학, 두루미, 이런 게 있을 거 아니야.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건 우린 몰라. 분류하고 나누는 건 인간만 해. 쟤는 그냥 많이 먹고, 한동안 안 보였어. 기온이 엉망이라 길을 못 찾는다고 들었어. 예민한 애야. 종을 알아야만 저게 있다는 걸 인정할 거야? 모르면 쟤는 존재하는 게 아닌 거야?

너는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이야.

나한테 필요 없는 정보야. 알려주지 마. 기억하지 않을 거야. 기억하면 외로워져.

왜?

네가 그렇게 말하지만 않으면, 나는 언젠가 저 예민한 애처럼 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어. 내 몸은 나른할 땐 숲이 되기도 하고, 헤엄을 칠 땐 파도가 되기도 해. 등을 말릴 땐 바람이 되기도 하지. 나는 자유자재로 변하고, 속하고, 벗어날 수 있어. 하지만 구분 지으면, 선이 생겨. 넘을 수 없는. 내가 갇혀 있던 가짜 바다의 투명한 벽처럼. 선이 생기면 오래 살 수 없어. 넘을 수 없다는 좌절이, 마음을 늙게 해.



장풍이는 인간의 속도와 감정으로는 끝내 이해되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늘 이유를 만들고, 명분을 붙이고, 자신을 정당화해왔으니까.


하지만 장풍이는 그 모든 언어 바깥에 있다.



‘분류하고, 나누고,’ 살아있음을 증명하게 하는, 그 권력은 대체 누가 인간에게 부여한걸까?



아내가 말하는 사랑은 늘 그런 식이다. 혹시 존재할지도 모르는 아주 조그만 액운조차 막아주고픈.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가장 조용하지만, 단단한 사랑처럼 느껴졌다.


붙잡지도, 설득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 사랑.



사람들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지. 장풍이가 바다로 돌아갔듯이, 결국에는. 하지만 나는 복수를 아는 인간이다.
그러니 돌아오지 마십시오, 그대들.
당신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이제 이 행성에는 우리뿐입니다.


복수를 모르는 거북이와 그 복수를 대신 하는 인간의 사죄였을까.


이 역시도 연민이고, 사랑의 한 형태일 것이다.



약하고, 소외되고, 늘 밀려나던 존재들만이 끝내 이 지구에 남았다는 사실이 묘하게 통쾌했다.


이토록 짭짤하면서도 시원스러운 결말이라니.






작가의 말, 그리고 좀비의 정체.



작가의 말을 읽으며 이 모든 이야기가 다시 열렸다.


좀비는 괴물이 아니라, 살아 있지만 마음속에서 먼저 죽여버린 사람들의 은유처럼 다가왔다.



복도 끝, 병실 침대, 방 안에 남겨진 사람들.


그러니까,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환자, 보호자, 동물


주류가 만든 사각지대에서, 살아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이들.



그래서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라는 제목은 종말의 공간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끝내 사랑이었다.


죽음 이후에도 남아버린 기억과 감각을, 끝까지 사랑이라고 불러보려는 태도.



책의 끝에서, 나는 다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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