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를 만나면서 의미있다고 생각한 것이 많지만 그 중 나를 가장 바꾸어 놓은 것이 바로 교육과정 재구성'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만나면서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는 그리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교사가 되었다.
새학년을 시작하는 2월, 한 교실에서 A선생님과 B선생님과 함께 만났다. 3월부터 가르쳐야 할 6학년 어린이들의 1년 계획을 위해서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교과서와 지도서 등을 책상위에 펼쳐 놓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3월에는 일단 어린이들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할 것 같아요. 어린이들끼리도 그렇고 선생님과도 그렇구요."
"맞아요. 그럼 3월에 어떤 내용을 어린이들하고 함께 공부하면 좋을 지 의견을 모아볼까요?"
포스트잇과 펜을 나눠 갖은 우리는 3월에 어린이들과 하고 싶은 내용 또는 활동 등을 적기 시작했다. 다년간의 경험과 당시 상황, 또는 6학년 어린이들의 특성 등을 고려했다.
우리반 가치 찾기, 가이드라인 세우기, 친구관계, 학급규칙, 서로에 대해 알기, 자존감키우기, 공동체 만들기, 의사소통 기술 등 학기초에 필요한 다양한 수업내용과 활동 들을 큰 도화지에 붙이고 가지치기를 시작한다. 비슷한 내용을 하나의 줄기로 모아 큰 소주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모아 보니 3개의 소주제가 만들어졌다.
나, 너, 우리
그리고 각 소주제에 맞는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갔다. 그렇게 우리 학년만의 3월 계획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수업을 하면서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누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어떤 부분은 빠지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더 채워지기도 한다.
3월의 계획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 한숨 돌린 우리는 이제 1년을 계획하기로 했다. 1년 계획은 3월 계획보다는 조금 느슨하게 세워진다. 전체적인 뼈대만 잡아두고 학기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 교과서와 지도서 등을 살펴보며 함께 배우면 좋을 내용들을 모아보았다. 보통 내용교과인 사회, 도덕을 중심으로 표현을 중심으로 하는 도구교과인 국어, 미술, 음악 등을 연계하여 재구성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사회교과에서 배우는 경제내용을 가르치면서 경제와 관련된 설명하는 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국어교과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배운 내용을 미술과 연계하여 포스터 만들기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어린이들이 지금 배워야 하는 주요 내용을 활용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과정 재구성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1년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학년 교육과정의 운영 방향을 함께 정했다. 그리고 학기 초 첫 날 편지를 통해 어린이들과 보호자에게 학년 교육과정의 운영 방향을 소개하였다.
6학년 교육과정 운영의 방향
1. 주제 중심의 프로젝트 수업을 운영합니다.
- 주제수업과 관련있는 체험학습 운영
-다양한 활동을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주제수업
-주제공책, 배움공책을 통해 배운 내용 되돌아보기
2. 교육과정 안에 예술활동과 문학활동을 통합하여 운영합니다.
-감각을 통한 지각과 사고력을 발달시키기 위한 수공예와 목공수업
-온작품 읽기, 미술관프로젝트 수업, 공연관람, 연극 수업 등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감수성과 표현력 기르기
3. 사춘기 아이들의 건강한 관계맺기를 위해 노력합니다
-학기 초 학년학급세우기 프로그램 운영
-학년의 밤 및 여학생의 날,남학생의 날 등 운영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소명으로 하는 가르침과 그 배움은
곧 즐거움이다
[선생님은 살아있는 교육과정이다.]
p330 (김용근 저, 물병자리)
"이미 많은 사람이 교육과정을 연구해서 만들어 놓은 교과서잖아요. 왜 굳이 다르게 가르치려고 해요?"
교육과정 재구성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 하곤 한다.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냐며 왜 교과서대로 가르치지 않냐고 항의하는 학부모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묻기도 한다.
처음 교실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순서대로 가르치는데 급급했다. 그런데 국어를 가르치다보면 '어? 이거 사회에서 나왔던 내용을 지문으로 가져왔네?', '지난 번 과학 발표 과제 주기 전에 이거 먼저 가르쳤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교과목의 서로 다른 교과서가 다른 교과를 고려하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서로 중복되고 순서도 뒤죽박죽. 그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나도 뒤죽박죽.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많은 과목을 담임교사와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교과서 단원 지도 순서를 바꾸는 것 부터 시작했었다. 3학년을 맡았을 때였는데 한 선생님께서 수학에서 소수를 먼저 배우고 과학 실험을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런 내용을 더 찾아서 교과서 단원 지도 순서를 조정해볼까요?"
그렇게 나의 첫 교육과정 재구성, 아니 교과서 단원지도 재구성이 시작되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조정한 순서대로 수업을 하니 훨씬 자연스러웠다. 또 이 내용을 먼저 가르치는 목적과 이유가 분명하니 더 자신감있게 가르칠 수 있었다.
사실, 많은 선생님들이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재구성을 하고 있다. 교과서 활동을 변형하거나, 추가하거나, 삭제하기도 한다. 어떤 주제는 교과서 대신 새로운 활동으로 어린이들과 만나기도 한다. 이런 고민과 노력만으로도 분명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혼자' 하기보다는 '함께'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각자 흩어진 아이디어들이 모여서 더 풍부한 수업이 되고, 나 혼자 떠올리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동료 교사가 꺼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막막해서 주저하던 걸,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하며 실천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결국,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 더 깊이 있고, 더 완성도 높은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길인 것 같다
교육과정 재구성은 교사로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한 학기 동안 가르쳐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어린이들이 배워야 할 핵심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더 쉽게, 더 깊게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들과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활동을 연계할 수 있을지, 심지어 체험학습은 어디로 갈지까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교육과정 재구성은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다. 함께 고민하며 묻고 답하는 동료교사가 있을 때 더 빛을 발한다. 서로의 아이디어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막연했던 계획들을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모습으로 바꾸어갈 수 있다.
교육과정 재구성은 단순히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다. 함께 연구하고, 실천하고, 나누는 과정 그 자체가 교육과정 재구성이다. 그리고 이 안에서 고민했던 모든 것이 어린이들의 배움으로 이어지고,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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