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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최우선인 학교

by 러블리쌤


처음 발령받은 학교, 어리둥절한 내가 맡은 업무는 학교방송과 스카우트 지원이었다.


설렘 반, 얼떨떨함 반이었던 그때를 떠올리면... 참, 쉽지 않았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제 막 2년차 첫 담임을 맡은 첫 날, 나는 방송으로 개학식을 진행해야 하는 업무담당자이기도 했기에 내 교실을 팽개치고 방송실로 향했다. 18년차가 되어도 여전히 떨리고 긴장되는 학급 어린이들과 만나는 첫 날, 그 첫 날 나는 교실에 없었다.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방송실에서 나는 내가 없는 교실을 걱정했다. 그 아쉬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뿐이었을까. 수업을 하다가도 전화가 와서 "운동장에 마이크가 안되요." "시청각실에 마이크 설치해주세요." 하면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약간의 자습(?)을 시키고 5층 건물을 뛰어 다니곤 했다. 그렇게 우리반과 수업은 뒷전이 된 채로 업무를 하기에 바빴다.


학교에서 담임들이 업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주로 '교과시간'이다. 중간에 짬이 나면 자기가 맡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기에 수업 중에도 메신저가 수시로 왔다. 또 관리자들은 수업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수업시간이 언제인지 모르는 지 "공문이 왔다.", "000업무를 처리하라." 등의 (별로 급하지도 않은) 메세지를 수업시간에 보내왔다. 어린이들이 하교한 이후에 각종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어느새 퇴근시간. 수업준비는 또 뒷전으로 밀렸다.




학교를 옮기고 육아휴직을 하고 오랜만에 복직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학교는 담임선생님 업무가 따로 없어요."


네? 업무가 없다고요?(물론 담임교사에게는 학교 업무를 제외하더라도 학급생활지도와 상담을 포함한 수만가지 학급, 학년업무가 이미 있다.)


담임교사는 다른 업무 없이 학급, 학년 운영에 전념하는 것. 그게 혁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들이 따로 있었지만 그 분들도 교실과 수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는 의미로 '업무지원팀'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또 등교시간에는 컴퓨터를 보고 있는게 아니라 어린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 한다는 이유로 아침마다 오는 일일업무도 쉬는 시간에 보내졌다.


학교가 수업 중심이라고?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당시 나에게는 참 생소한 일이었다.




초임학교에서는 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수업'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맡은 업무를 위해 '수업'이 포기되기도 했다. 방송조회를 진행하기 위해 우리 반 어린이들만 교실에 남겨두기도 했고 다른 학년에서 합동체육이라도 하는 날엔 마이크를 설치하기에 바빴다. 학부모 공개수업에 쓰는 영상을 촬영해달라고 다른 학년에 불려다녔다. 동학년 회의 시간에는 관심도 없는 옆 반 선생님 가정사나 뒷담화를 듣느라 지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선생님들도 나도 참 열심히 가르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었다. 수업은 각자 알아서 열심히 잘 하는 것이고 학교는 업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혁신학교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담임교사로서 업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고 혹시라도 학년이나 학급에서 협조할 일이 있더라도 수업이 모두 끝난 오후에 이뤄졌다. 동학년 회의 시간에는 주로 '수업'이야기가 오고 갔고 선생님들과 함께 잘 가르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학년이, 학급이 수업을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학교도 운영되었다. 예를 들어, 특정 요일에는 동학년 회의를 최우선으로 하여 다른 회의를 잡지 않는 등 교사들이 함께 협력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했다. 이런 방식 덕분에 학년과 학급이 수업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물론 담임교사에게 업무를 주지 않고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담임교사에게 업무를 주지 않는다고 업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맡아서 업무를 해야만 한다. 혁신학교에서는 '업무지원팀'이 업무지원팀이 그 일을 하긴 하지만, 운영하기 쉽지는 않다.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해서 없어지는 학교들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혁신학교의 업무지원팀을 적극 찬성하고 알리는 편이다. 왜냐하면 담임교사가 학교 업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내가 근무했던 그리고 근무하는 혁신학교에서는 학교 전체적으로 추진하는 업무는 업무지원팀 3-5명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몇 몇 사람이 학교 업무를 모두 맡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학교 업무는 꼭 필요한 교육활동 중심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 학급과 학년의 교육활동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단, 업무지원팀이 실제적으로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이 모두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는 것이 전제된 교직원회의(일명, 다모임)가 활성화되어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몇몇 사람들에게 업무가 과중되거나 일부 사람들의 입장에 모두가 끌려가기도 한다.


그럼 이 업무팀은 누가 해야 할까?


교사의 본연의 업무는 학급운영과 수업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업무지원팀을 계속 하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교사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많은 혁신학교에서 순환제로 업무지원팀을 운영한다. 모든 교사가 학교에 근무하는 5년동안 한 번은 업무지원팀을 하는 것이다.(물론 지원하는 교사가 없을 경우에 한해서)


모두가 하고 싶지 않으니 결국 다 함께 하는 수 밖에 없다. 한 학교에 보통 5년간 근무하기 때문에 4년은 학급담임으로, 1년은 업무지원팀으로 근무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여러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순환제로 1년씩 업무지원팀을 해왔다. 그리고 교사로서의 나의 경험이 혁신학교를 만난 전후로 크게 달라진 것처럼, 업무지원팀을 해 본 뒤 나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업무지원팀을 통해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학교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니 학급운영, 학년운영이 더 수월해졌다. 또 1년 업무에 집중하며 주어진 순환의무를 다 하면 남은 4년 동안은 마음 편하게 학급활동, 학년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은 점이다.


"나는 못해"

"굳이 내가?"


업무지원팀 이야기를 하면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감히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일 못하면 어떻게 해? 폐 끼치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는 선생님들에게 항상 하는 말.


"공문 확인, 기안 조금 늦게 했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언제나 교실이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담임선생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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