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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모두가 주인공인 졸업식을 그리며

혁신학교에서 졸업식을 만나다

by 러블리쌤


"졸업식날, 선생님들 꼭 와주세요."
교직원회의, 많은 혁신학교에서는 "다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다모임을 마무리하며 교무부장선생님이 전달하셨다.

'졸업식날? 나는 6학년 담임도 아닌데...'

어리둥절한 나와 달리 다른 선생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 장소를 나서고 있었다.

'종업식날 교실 정리하기도 바쁜데 졸업식은 또 언제가...' 불평하며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종업식이자 졸업식날, 1년 동안 동거동락하며 교실생활을 함께 한 어린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찐~하게 나누고 자리에 앉아 한 숨 돌리려는데 방송이 나왔다.

"교내에 계신 선생님들께 알려드립니다. 잠시 후 강당에서 졸업식이 시작됩니다. 교내에 계신 선생님들께서는 꼭 참석해주세요."

다시 한 번 나온 방송 소리에 어쩔 수 없이 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당은 이미 많은 졸업생들의 가족분들로 꽉 차 있었다. 인파를 뚫고 강당 앞쪽으로 가니 교직원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벌써 선생님들께서 자리를 채워주고 계셨다. 지각한 듯이 쭈뼛쭈뼛 비집고 들어가 졸업식을 지켜봤다. 수년 전에 다른 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할 때는 강당이 없어서 교실에서 졸업식을 했었다. 그러니 교사가 되어 강당에서 하는 졸업식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잠시 후 생경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 학급 어린이들 전체가 일어나 무대 옆에 일렬로 줄을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명씩 무대 위로 올라가 교장선생님께 졸업상과 1인 1상을 받았다. 강당 앞 스크린에는 상을 받는 어린이들의 사진과 상장이름, 그리고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 마디씩 써 있었다. 그리고 상을 받은 어린이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교직원석에 앉아 있던 선생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양 옆으로 일명 "축복의 터널"을 만들었다. 그리고 터널을 지나는 어린이를 진심으로 축하주는 것이었다.

"졸업 축하해."
"중학교 가서 잘 지내."
"정말 수고 많았어. 건강하렴."

터널을 지나는 졸업생 어린이들은 여러 선생님들의 진짜 축복 속에 쑥스럽게 또는 당당하게 또는 감사하게 모두 각자의 표정으로 터널을 지나갔다.

그렇게 150명이 되는 어린이들을 한 명 한 명 축하해주는 졸업식이라니!

중간 중간 지칠 때도 있었지만(?) 어린이마다 개성이 넘치는 상이름을 보며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또 4학년때, 5학년때 어린이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들이 뿌듯한 마음으로 어린이들을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사실, 나는 당시 학교에서 저학년을 맡았기에 졸업을 하는 6학년 어린이들을 한 명도 몰랐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었다.

이 경험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어린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온 몸으로 느꼈다고 할까? 그리고 그 이후에 다른 학교에 가서 6학년 담임을 할 때도 졸업식을 준비하며 "한 명 한 명, 모두가 주인공인 졸업식"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학부모가 되어 학교 졸업식에 처음으로 참석하였다. 계속 교사로서 졸업식을 준비하고 만나다 학부모로서 졸업식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졸업식을 보면서 조금(어쩌면 많이) 화가 났다. 어쩜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그 때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을까. 강당에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모아놓고 교장선생님은 "회고사"라는 이름으로 20-30분간 연설인지 훈화인지 모를 자화자찬의 말씀을 하고 졸업장과 1인 1상은 학생회를 한 대표어린이만 수상했다. 6학년 어린이는 송사를 5학년 어린이는 답사를 읽어내려갔다.

내가 졸업식에서 궁금했던 건 학교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교장선생님이 지난 세월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졸업식에서 진짜 보고 싶었던 것은 6학년 어린이들의 모습이었다. 졸업식을 보면서 '이 졸업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읽고

'졸업식이 다 그렇지.'

'별 것도 아닌 걸로 그러네.'

'일일이 상 주려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잊을 수 없다.

무대 위에서 상을 받고 걸어나오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축복의 터널을 지나면서 선생님들에게 격려받으며 지었던 어린이들의 표정을.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보는 그 짧은 순간.
졸업식에서만큼은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졸업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더 자세한 졸업이야기는 블로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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