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봐야 예쁘다. 6학년도 그렇다.
우리 학교가 걸어온 길.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와, 진짜 말 안 들어요.”
“저는 재미있었어요. 애들이 정말 귀여워요.”
1학년 동생들에게 학교를 안내해 주고 돌아오는 길, 아이들의 아우성이 요란하다. 힘들었지만 뿌듯함이 묻어나는 투정 소리이자 교사로서는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되는 그런 요란함이었다.
많은 혁신학교에서 하는 1학년과 관계 맺기 활동. 내가 혁신학교에서 정말 좋은 활동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활동 중 하나이다. 이 활동을 처음 들은 선생님들은 어려운 점을 생각하며 걱정하신다. 괜히 1학년과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당연한 우려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이 활동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동학년 선생님들에게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할 수 있었다. 고맙게도 동학년 선생님들은 우려를 뒤로 하고 함께 해주셨다.
다행히 1년 동안 6학년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의젓하게 6학년으로서 역할을 잘 해냈다. (적어도 1학년과 관계 맺기를 할 때는!!) 그렇게 우리는 1년 동안 1학년과 서로 짝 반이 되어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다.
이걸 할 수 있는 건 너희밖에 없어.
처음 1학년과 관계 맺기 활동에 대해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안내했을 때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아무리 6년 동안 다닌 학교지만 처음 보는 낯선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사춘기에 접어든 6학년 아이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선생님, 이거 우리가 왜 해야 해요. 5학년도 있잖아요.”
“5학년은 못 해. 우리 학교에서 이걸 할 수 있는 건 너희밖에 없어.”
아이들의 불평을 잠재우고 1학년 짝 명단을 알려주었다. 1학년 학급이 6학년의 2배라 1 학급당 2반의 짝 반이 생겼다. 아이들에 따라 2~3명의 1학년 동생들이 생긴 것이다. 평소 동생이 있는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형제가 없거나 막내인 아이들의 얼굴에는 난감함이 드러났다. 잔뜩 긴장한 6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1학년 교실 앞에 섰다. 긴장한 건 1학년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긴장과 설렘이 가득한 교실 안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고 나는 밖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1학년 아이들이 더 긴장하지 않도록 첫 진행은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맡았다. 1학년에는 이 활동을 해본 적 있는 선생님이 여럿 계셔서 1학년 선생님께서도 적극적으로 함께 활동해 주셨다.
나는 창문 너머로 우리 반 아이들의 긴장된 낯선 얼굴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긴장, 설렘, 의지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은 1학년 동생들의 손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동생들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 얼굴의 긴장은 이내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단 한 명도 딴짓하는 아이 없이 모든 아이가 짝 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1학년 동생들에게 학교를 설명하고 미션을 해결하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의 얼굴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마음껏 칭찬하고 격려했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종종 동생들과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1학년 짝 반 아이들을 우리 반 아이들을 신나게 반겨주었다. 2학기가 되어 우리는 다시 한번 ‘함께 놀기’ 활동을 진행하였다. 1학년 동생들과 함께 태극기 바람개비도 만들도 운동장에서 피구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1학년을 초대하는 건 어때?
1학년 동생들과의 관계가 무르익어갈 11월쯤. 6학년은 졸업을 앞두고 연극 수업을 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3~6학년 학생들이 연극 수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연극 수업의 마지막은 항상 공연으로 마무리해 왔다. 경험이 있어서일까? 공연 소식을 알리자,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공연은 안 하면 안 돼요?”
“저는 그냥 나무할게요.”
6학년쯤 되니 다른 친구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운 아이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1학년을 초대하는 건 어때?”
“다른 반 친구들 앞에서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요.”
그렇게 1학년을 관객으로 한 연극이 계획하였다. 대본을 쓰고 싶은 사람은 스토리를 간단하게 써오도록 했다. 그중 한 친구의 작품을 바탕으로 2명의 어린이 작가와 담임교사, 연극 선생님이 힘을 합쳐 우리 반만의 대본이 완성되었다. 1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주제로 만들어진 연극이었다. 연극 수업 시간과 국어 시간을 통해 여러 번의 연습과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연극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공연 당일! 공연장인 예술활동실로 1학년 2 학급 어린이들이 입장했다.
“와, 재미있었어요.”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내 짝 형이 주인공이어서 좋았어요.”
연극은 성공적이었다. 1학년 동생들은 직접 만든 꽃다발 편지를 가져와 짝 언니, 형들에게 전달하였다. 정말 관객을 초대하여 멋진 공연 한 편을 완성한 느낌이 들었다.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저마다 무용담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촬영한 연극을 몇 번씩 돌려보며 교실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선생님, 6학년 아이들 괜찮아요?
“6학년 아이들 요즘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6학년 담임을 맡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몇 번 듣다 보면 6학년은 학교에서 공공의 적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다른 학년 아이들보다 키도 덩치도 갑자기 커지고 행동도 목소리도 크다 보니 더 소란스럽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으레 6학년으로서 받는 눈칫밥이 싫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가까이 만나보면 세상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6학년이다. 초등학교에서 할 줄 아는 것이 가장 많은 학년이고 제일 말이 잘 통하는 학년. 우리는 1학년과의 관계 맺기 활동처럼 다른 학년과 만나는 활동을 많이 계획했다.
1학년과 관계 맺기(학교 안내하기, 함께 놀기, 연극에 초대하기, 그림책 읽어주기 등)
‘세계’에 대해 배우는 2학년 동생들에게 대륙별 부스 활동 초대하기
방과 후 전교생과 함께한 나눔터
수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학년 동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걸 많이 해보게 했다. 친화력이 좋은 아이,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 연극을 잘하는 아이, 설명을 잘하는 아이, 꼼꼼한 아이, 친절한 아이, 책을 잘 읽는 아이 등 다양한 아이들의 장점을 스스로 만나도록 그리고 각자의 자존감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6학년 어린이들을 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졸업식 날, 졸업장과 특기상을 받고 내려오는 길, 역시 이전 혁신학교에서 배운 축복의 터널을 운영했다. 축복의 터널은 교사들이 졸업생들이 지나가는 길 양쪽에 서서 축복을 해주는 것이다. 아주 짧은 5초~10초의 시간이지만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며 축복의 박수를 보내는 일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울렸다. 앞으로 근무하게 될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이어가고 싶은 졸업식 문화였다. 종업식으로 바쁜 와중에 다른 학년 교사들도 참석해 주셨다.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아이들이 받았던 이 환대가 아이들 마음속에 남아 힘들 때 꺼낼 수 있는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1년 동안 6학년 동학년 선생님들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나눈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함께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 또 우리는 6학년의 이야기를 학교의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는 우리에게 되돌아와 우리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학교 어딘가에 남아 또 다른 누군가를 움직이게 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학교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