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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살림 이야기 1

좁은 일자주방에서 살아남기

by 슈퍼버니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있다 보면 유독 눈이 머무는 곳이 있다.

내 마음에 들기엔 정리가 부족한 곳

일하기 편하고 보기 좋게 정리한 곳

혹은 그저 내 마음이 편해지는 곳


위 세 가지의 이유가 혼재되어 최근 며칠 전까지도 계속 정리한 곳이 있으니, 주방이다.


우리 집 주방은 길이가 짧은 일자 주방이다. 그래서 서랍 한 칸, 선반 한 칸이 소중하다.

다행히 주방 살림살이가 많지 않아 수납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여기서 더 늘어나면 곤란해진다.

편하고 효율적으로 정리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지난번 책《버리는 즐거움》도 그렇고, 자주 보이는 미니멀라이프 콘텐츠들에서도 대부분 깔끔한 수납과 물건이 몇 개 올려져 있지 않은 상판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 집 상판은 깨끗하게 비우기가 영 불가능하다. 상판이 아니면 자리할 곳이 없는 물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온 보관하는 각종 조미료와 음식물 쓰레기통, 세제, 손 비누까지 온갖 물품들이 조리대, 싱크대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사 후 몇 개월 동안 물건을 정리하며, 요리조리 자리를 변경해 보기도 했다.



특히 조미료는 바구니에 담아 하부장에 넣어놓고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요리할 때마다 꺼냈다 넣었다 하니 번거로워 결국 조리대 쪽으로 자리를 정했다.


맛을 담당하는 소금부터 주로 소독 세척에 쓰는 식초까지 하루 건너 사용하는 꼴이라, 지금은 굳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넣으려 애쓰지 않는다.

조미료들이 눈에 보이는 곳이 있으니, 어쩌다 한 번씩 요리를 하는 남편도 '그거 어디에 있어?' 하는 질문 없이 편하게 요리한다.



상판에는 식기건조대도 자리하고 있다. 이사 전 집에서부터 사용해 온 스타픽스 원터치 식기건조대는 비싼 돈 주고 산 보람이 있다. 이사 후 여전히 좁은 주방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남편은 식기세척기의 필요성을 말하며 둘 자리는 마음만 먹으면 다 만들어진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절대 자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난 설거지를 하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잡념을 없애는 효과를 얻기도 하니, 지금처럼 설거지하는 것도 좋다.



아, 수세미는 직접 떠서 사용한다.

이전에 친환경 살림을 해보겠다며 천연수세미를 사용해보기도 했지만, 사용감이 불편하여 결국 뜨개수세미로 돌아왔다.

글쓰기 외에 유일한 취미라 한번 뜰 때 실을 다 쓸 때까지 떠놓고, 언니네와 시댁에도 나눔한다.



이사 후, 문을 열 때마다 마음을 심란하게 했던 공간은 이제야 자꾸 열어보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종종 집안 곳곳을 뒤집어 정리하곤 한다.

이불들은 옷장과 선반을 몇 번이나 이동했고, 지금은 처분한 소파 테이블과 작은 책꽂이도 이리저리 자리를 옮겼다.


살림이라는 게 이런 걸까.


수많은 생각들로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와 청소로 멀리 내보내고, 그 자리에 편안함만 남기는 것..


매일 조금씩 나만 알아보는 변화이지만, 이렇게 집안 여기저기 내 눈이 머무는 곳에, 내 손길이 닿는 곳에 더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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