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eeze Apr 12. 2024

길었던 아침 등굣길

작은 파란새의 영면 : 편안히 쉬기를..

평소보다 무거워진 책가방을 메고 제제가 등굣길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좀 들어주지~'라며 삐죽대는 딸과 '그러게, 적당히 넣어야지'라며 자신의 몫은 자신이 책임져야한다는 것을 8살 딸에게 단호히 가르치려는 엄마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다. 물론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주문이 오늘도 어김없이 통하며 입학 후 처음으로 딸내미 가방은 엄마의 어깨에 메어져 버스 정류소 모자 쓴 할아버지 계신 곳까지 들어주겠노라는 약속과 함께 쫄래 쫄래 흔들려간다. 


버스 정류소 모자 쓴 할아버지가 오늘은 안나오셨나보다. 대신 피아노 학원 언니 두 명이 건너편에서 제제를 부르며 죽은 파란새가 있다고 무언가 구경이라도 난 듯 알려준다. 학교 가던 길을 그냥 갔으면 좋으련만 제제는 언니들의 부름에 가서 보고싶다며 '엄마 제바알~' 필살기로 허락을 받곤 언니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눈을 꼭 감은 채 영면에 든 작은 파란새를 바라보았다. 


"엄마, 파란새가 죽은거야? 그럼 차가운 바닥에 파란새가 계속 있으면 안되잖아. 동물 병원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려주고 파란새를 편안한 곳에 데려다 주자 엄마" 


동물병원의 오픈 시간은 아직도 멀었거니와 상쾌한 아침 등굣길에 '죽음'을 마주해야하는 상황과 이 작은 새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엄마는 자신이 어른 흉내를 내는 바보같아 불편한 감정이 마음에서 불쑥 솟아 올랐다. 그런 엄마기분을 살피던 제제는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듯 기운 모습을 보이며 씩씩하게 교실에 들어가면서도 차가운 바닥에 있는 새를 어떻게 해달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순수한 그녀의 당부에 나는 편의점에 들러 목장갑을 샀다. 그리고 길거리에 폐지 수거를 기다리고 있는 상자를 하나 들고 차가운 바닥에서 영면에 든 그 작은 파란새에게로 갔다. 작은 새를 두 손에 드니 아기다. 굳어서 딱딱했지만 자는 모습은 순수한 아기의 모습이었다. 상자에 조심히 넣어 들곤 절이 있는 산으로 갔다. 부처님이 계신 산이라면 이 아이의 영면을 받아줄 것 같았다. 흙을 파서 묻어주려니 이 작은 새에게 흙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울 것 같았고, 공갈벌레가 꿈틀거리는 축축한 흙에 이대로 넣기엔 서글펐다. 새는 나뭇가지로 만든 둥지에 산다는 생각이 스치며 마른 소나무 잎을 푹신히 깔고 그 곳에 그 작은 파란새를 뉘였다. 그리고 이불을 덮듯 토닥토닥 마른 나뭇잎을 덮어주었다. 마치 침대에 누워 잠든 아기새처럼 편안해 보였다. 옆 돌계단을 올라 커다란 부처님상에 세번 절을 올리며 부탁드렸다. 이 작은 파란새가 편안히 쉬게 해달라고. 그렇게 절을 올리고 돌아오는 돌 길에 작은 하트돌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랑으로 돌아가라는 기원과 함께 작은 파란새 곁에 하트돌을 놓아주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긴 아침 등굣길이었다. 무거웠던 딸내미 가방은 결국 교문까지 내가 들어주었구나! 


 

2024년 4월 12일 아침을 기리며...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사랑캔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