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입니다

God’s Plan not Mine

by Breeze

오늘 토요 새벽 코칭을 통해서 굳게 잠겨있었던 자물쇠 하나가 풀렸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내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임을 알았다. 어떤 날은 수용이 되다가도 또다시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다시 무릎을 꿇으며 반복했다. 어떤 이는 그 마저도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였다. 용서하지 못하는 나도 그대로 보고 그 고통도 있는 그대로. 그 말에 공감하며 내 속의 나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보고 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담담히 고백하는 코치님의 말씀에 순간 빛이 번뜩했다. 눈물이 흘러내리며, 왜 내가 이 코치님과의 코칭 장에서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었는지를 그 비밀과 나 자신의 숨겨진 오만한 저항의 뿌리를 알았다. 미사를 가면 ‘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많은 죄를 지었사오니’라는 기도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깊은 내면에는 여전히 <나는 죄인이 아니다>가 살아있었던 것이었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 에고의 힘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투명한 고백을 통해 오늘 드디어 용서받았다. 아니, 이미 오래전 용서받았음을 이제야 내가 알아차렸다. 이런 나라도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하심을 보고 느낀다.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배워간다. 이리의 부고 소식을 듣는 날, 기도 명상을 통해 보았던 한 밤의 거친 파도 속 십자가에 매달린 그가 이미 나의 죄를 지고 가주셨다. 그리고 하얀 코끼리를 타고 하얀 터번을 쓰고 내게 미소 짓고 간 왕족은 아직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확실히 아는 것은 이런 나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


하수구 어딘가 꽉 막혀있던 덩어리가 쓸려내려 가듯 내 인생 어딘가 꽉 막혀있던 큰 무엇이 사라졌다. 흐른다.




신 앞으로 오기 전 ‘나는 죄인이다’라는 말이 참으로 거북하고, 사이비 종교처럼 세뇌시키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왜 죄인이야? 왜 우리가 죄인이야? 이러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죄인이다’라는 받아들임이 신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음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은 타인이 우린 죄인이다, 당신은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라고 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접근하면 되려 에고의 저항으로 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여지는 길을 더 둘러가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나처럼 사나운 에고를 가진 자들의 경우에 말이다.


나는 신이다


또한, 존재를 다루는 여러 분야의 발자국을 만날 때 ’나‘라고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정의를 하고 만나야 한다. 안 그러면 안드로메다로… 엄청난 왜곡으로 방황을 하다가 둘러둘러 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물론 그 모든 걸음이 필요하기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말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다 vs. 포기도 용기다.


여기서 ‘포기’를 같은 정의로 보았던 때에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고ㅡ 하며 답답했었다. 뭐고? 뭐 어쩌라고? 이러면서.


이렇듯 주창한 자가 표현한 ‘나’가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 다 똑같이 해석해 버리면 ‘포기’의 문장만큼이나 미로 속을 헤매게 된다.


’ 나는 신이다 ‘라는 말은 무아(No Ego)로 신과 완준한 합일이 된 경지가 되어서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아가 되면 ’ 나는 신이다 ‘라는 표현 조차 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나‘이기 때문에 ’ 신‘이라는 표현으로 구분하며 선언할 필요가 있을까.


이 글로 표현하는 동안 나의 에고는 살아있으며, 나의 에고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나는 신의 품 안에 있는 자이며, 내 안에 신이 거하신다. 예전에 연예인 차승원이 운동으로 몸을 잘 가꾸는 것을 보며 누군가 왜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느냐고 물었더니 (솔직히 말하면 질문 자체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차승원이 답했다. 자신은 자신의 육체가 신을 모시는 신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을 관리하기 위해 힘쓴다고 말이다.


God’s plan not Mine


오늘 하루 내가 세상에 보낸 글, 웃음, 말, 눈빛 등 내가 하고 싶다라는 기준으로 세상에 흘러보낸다. 그 공명 속에서 누군가 무언가 와닿는 울림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즉, 내 에고가 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이며, 당신이 느낀 그 울림은 내가 준 것이 아니라 신이 당신에게 보낸 사랑이다.


오늘 새벽 ‘나는 죄인입니다’를 고백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은 코치님을 통해 신의 귀한 사랑이 다 닿았음을 느꼈다. 코치님께도 너무 감사하다. 신의 사랑에도 감사하다. 이렇듯 우린 서로의 안내자다. 그리고 남는 것은 결국 또 ‘감사‘다.


Lovely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