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의 바운더리에서 누군가 '선'을 넘었을 때 진정으로 그 '선'을 알게 된다는 구절이 내 인생의 되감기 버튼을 눌렸어. 내 경우엔 내가 공(空)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운더리가 생긴 것 같지만 말이야. 너의 '선(Boundary)'은 무엇이었니?
네 말대로 견딜 수 없는 <괜찮지 않음>을 '선'으로 규정한다면, 나에게 최후의 보루와 같은 '선'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었어. 관계를 중시하는 까닭에 불이 뜨겁다 뜨겁다 하면서도 불을 내려 놓지 못하고 꼭 쥐고 있는 사람이 나였거든. 사랑은 불에 타더라도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고, 내 '선'을 지키려는 것은 사랑과 먼 것일거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아. 그랬던 탓에 모든 이별 후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가장 힘들었으니까 말이야. '선'을 지키는 것이, 즉 '경계'를 지키는 것 또한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래도 걸렸고,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이제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어가는 중인 것 같아. 반복되는 거짓말로 자식 이외에 함께 이룬 모든 것이 파탄이 나기도 하고, 모든 것을 서렌더하고 말이 아니라 에너지를 느낀다던 친구가 내 것은 틀렸고, 내 말이 거북하다며 내게 침묵을 강요하는 이별을 겪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끄나풀을 잡고 있었으니까. 집착이었고, 진실되지 못한 모습이었다고 해도 내 손으로 먼저 관계를 놓아버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더라. 자신의 의지대로 나를 떠나버린 이별 마저도 혹시나 문을 열고 기다렸으니까. 그런데 '그건 너 아니야!'라는 말에 내가 견딜 수 없는 <괜찮지 않음>을 마주 했어. 내 속에 수많은 '나'들은 인간의 한계이자, 불완전하기 때문에 로봇과 다른 완전한 인간일 수 있게 해주는 요소라고 생각해. 그런데 어떤 나의 부분을 보고 내가 아니라는 친구의 외침은 정확한 뜻을 알 순 없지만 나의 전인성이 아니라 부분만을 나로 봐주는 관계는 지속할 수 없음이 나의 진실이었어. 소중했던 친구를 잃고나서야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괜찮지 않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어.
인연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 법정 스님 -
거짓말을 반복하며 속인 사람과 서렌더라고 주창하며 실제로는 영적우월감에 도취된 사람과의 인연에서 진실이 없던 사람은 '나'였던 것 같아. 위에서 말했듯, 나는 경계를 세우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며 내 눈을 가려버린거야. 내 진실은 '괜찮지 않음'이었는데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하며 먹을 수 없는 바늘을 맛있다며 먹는 거짓을 행했으니 말이야. 자신의 선(Boundary)을 지키는 사람이 진실이 있는 사람인거지. 내 '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야 말로 인연으로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 '선'을 넘었을 때 비로소 내 '선'을 알게 되는 꼴이 재미있게도 뫼비우스의 띠네. Infinity. 후후.. 공? 그래, 공(空)!
나와의 인연으로 피해를 본 존재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며 음력 2025년을 마무리해야겠어. 용서와 평안을 기도하며 감사와 사랑을 보내봐.
허니, 우리도 서로 '선'에 삐릿, 신호가 오면 진실되게 알려주자. 삐릿삐릿, 새해 복 많이 받아, Hon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