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선 Jan 15. 2024

참을 수 없는 피드백의 강렬함

가정폭력 인정하기 ④

 좋은 피드백이든 나쁜 피드백이든 가족들이 주는 피드백이 강렬했다고 했잖아요. 혹시 나쁜 쪽의 피드백이란 건 어떤건가요? 나는 조금씩 망설이면서 대답했다. 어떤 설명으로도 전달하기 어려운 이 기분. 가족들과 함께 매일 같이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공유하고, 공감을 받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고, 보드게임을 같이 하고, 함께 유니폼을 맞춰입고 축구를 하고, 내가 원하면 목재를 구해다가 베란다에 아지트도 뚝딱 같이 지어내는 그런 단란한 가족. 이 가족들이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것-빗자루, 청소기, 공사용 목재-으로 때리거나, 물건을 마음대로 부수거나, 송곳과 같은 흉기를 집어 던지거나, 걷어차고, 뺨을 때리고, 목을 조르고, 내 방문에 못을 박아 가두려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려동물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다고.
이걸 나는 좋든 나쁘든 피드백이 강하고 빠른 환경이었다고 이름 붙였고, 지금도 나쁜 피드백도 상관 없으니 바로바로 반응해주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지난 금요일에 부부상담을 다녀왔다. 대화하자는 요청을 반복하는 나에게 짝꿍이 제시한 해결책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이보다 더한 난관도 헤쳐왔는데(혹은 그렇게 믿고 있는데) 고작해야 대화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짝꿍이 '전문가'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다룰 권한을 주면서 내게 주지 않는 이유는 나의 무언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인가? 마음한켠에 거스러미가 남아, 가기싫다는 마음이 계속 올라왔기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자꾸만 이야기하고 괜찮다는 말을 듣기를 원했다. 


상담현장에 가서도 비슷했다. 질문지를 받자마자 제대로 읽지도 않고 휘리릭 써냈다. 그러다보니 가족관계의 보호자란에는 남편을 쓰고 그외 가족도 아무것도 적어서 내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은 처음에 당황하신 듯, 부모님의 존재를 물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부모의 존재와 나이, 남동생의 존재를 기입했다. 그외 문제상황들을 써낼 때 약간 고민이 되었다. 나를 이번 상담으로 이끌지는 않았지만 내가 늘상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표시해넣어야 할까. 수면장애가 있고, 감정기복이 있어서 약을 먹고 있고, 트라우마라고 할 것 까진 없지만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수초간 고민한 끝에 나는 이번 상담과는 관계가 크지 않다고 느낀 것을 자의적으로 빼고 써넣었다. 


그리고 가기 전 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했듯이 짝꿍의 이야기에 한참을 집중했다. 강압적인 아버지와의 상호작용과 그로인한 상처들. 상호상담을 거의 2년간 해오면서 가끔 보게되는 장면이지만, 짝꿍이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여 드러내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그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아버지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나와의 관계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뒷부분에서는 어린 시절 동생을 잃었던 경험에 대해서 짤막하게 언급했는데, 상담사의 반응을 봐서는 짝꿍도 이건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자의적으로 빼놓고 적어낸 모양이었다. 해결해야할 과제가 상당히 많아 상담사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러다 대망의 내 차례. 상담이 20분여 남은 시점에서 나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셨다. 좋은 피드백이든 나쁜 피드백이든 가족들이 주는 피드백이 강렬했다고 했잖아요. 혹시 나쁜 쪽의 피드백이란 건 어떤건가요? 나는 조금씩 망설이면서 대답했다. 어떤 설명으로도 전달하기 어려운 이 기분. 가족들과 함께 매일 같이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공유하고, 공감을 받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고, 보드게임을 같이 하고, 함께 유니폼을 맞춰입고 축구를 하고, 내가 원하면 목재를 구해다가 베란다에 아지트도 뚝딱 같이 지어내는 그런 단란한 가족. 이 가족들이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것-빗자루, 청소기, 공사용 목재-으로 때리거나, 물건을 마음대로 부수거나, 송곳과 같은 흉기를 집어 던지거나, 걷어차고, 뺨을 때리고, 목을 조르고, 내 방문에 못을 박아 가두려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려동물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다고.


이걸 나는 좋든 나쁘든 피드백이 강하고 빠른 환경이었다고 이름 붙였고, 지금도 나쁜 피드백도 상관 없으니 바로바로 반응해주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상담선생님은 잠시 말을 고르셨다. 가정폭력은 평소에 아무리 잘해준다고 하더라도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문제예요. 나도 안다. 나는 아직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 문제가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말하면 누군가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이 모든 것들을 남은 시간 내에 설명하기는 어려워보였다. 나는 그냥 맞아요, 폭력은 폭력이죠, 하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상담은 최대 5회기, 짧으면 3회기안에 종료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하기로 일단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내 감정을 투사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담 선생님의 눈에는 '이놈들 이거 개인상담도 좀 받아야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살짝 끼어있는 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 정반대인 둘이 만났을까. 한쪽은 외부 환경에 대해서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한쪽은 고통스런 환경 속에서 부싯돌마냥 일단 닥돌하고 보는 것으로 해결을 보는 사람이니. 상담선생님은 마무리를 하며 짧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서로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 다른 것 같아요. 진선씨는 외로우면 사람들과 부대껴서 해결하고 싶어하고, 민주씨는 이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고 혼자 있음으로서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하네요. 이 거리감을 조절하는 연습부터 해보죠.


하긴 우리 가족문제의 해결도 결국은 거리감에서 시작했다. 우리를 개인으로 쪼개고, 개인과 그들의 감정을 분리해내고, 각자 자신의 감정을 남 탓을 하는 대신 스스로가 짊어지고 가게 만듦으로 서로를 독립시켰다. 그 과정은 상당히 질척질척하고 아팠다. 하지만 한번 해봤기 때문인가, 상대가 어쨌든 문제 해결의 의지를 함께 보이고 있어서인가 원가정의 문제보다는 해결책이 한결 손쉬울 것 같기는 했다.


가정폭력에 대한 작업을 이미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부부상담에서 다시 물위로 떠오르고 나니 다시한번 정리되지 않은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주 목요일에 상담을 하고 나서 또 다루게 될 수도 있겠지.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 좀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상담을 3회차 정도로 마무리짓고 난다면, 내 개인적으로 오래 가져왔던 또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좀더 쉽게 풀어낼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