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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선 Jul 28. 2024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위대한 유산 ①

도대체 사람이 생각 없이 살아갈 수가 있나. 요즘의 화두다. 내 짝꿍과 나 사이에 '사유'의 갭은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유'는 무엇으로 사는가! 다 필요 없고, 왜 이런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지나 좀 알았으면 좋겠다. 답답해서 죽기 일보 직전이다. 다른 동거인을 거느리고 사시는 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존해 계시는지.


요즘 우리 집에는 '왜 그렇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이 많다. 그리고 그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이 나온 적은 별로 없다. 질문을 바꿔달라는 요청과 함께 내가 무섭다는 클레임이 들어왔는데, 나는 억울하다! 맹세컨데, 내가 윽박을 지른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지르거나 협박을 하거나 욕을 하거나 저주를 하거나 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나는 '네가 지금 왜 이러는 건지 한번 생각을 해보고 말을 하도록 하라.'는 주문을 했을 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어렵고 힘들다는 거 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섭다는 말에 대해서는 굉장히 황당한 주장이다 이거예요.


기실,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 없다는 것 자체도 내게는 좀 황당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자신을 모르고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저것 다 모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이렇게 하얗게 모르는 일이 가능한가?



얼마 전 「사상검증구역:더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같이 보고 다른 활동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프로그램을 보며 거기서 나온 페미니즘적인 성향, 좌파-우파성향, 서민-부유성향, 개방-전통 성향 네 가지로 나누는 테스트를 해보았던 결과에 대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부모님이 두 분 다 목회와 활동을 하시는 분이어서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본인이 부유가 나와서 놀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친구에게 전달했더니, 부유의 척도에 경제적인 것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자본에 대한 것도 들어가기 때문에 대안학교를 보내실 정도의 배경을 갖고 있는 지적 수준의 가정이라 부유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자신의 친구의 말도 나에게 전해주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유산 중 정말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포함한 문화적 자본이 정말 큰 역할을 차지한다. 대체로 가난한 가정에서 빈곤이 대물림되는 이유는 경제적 계층으로 인해 벗어날 수 있는 지지기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타 이유로 그런 경제적 배경을 얻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잘 활용하기 어려운 문화 자본이 일정 지분을 차지하리라 예상해 볼 수 있다. 마침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 예측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보완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빈곤가정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하지 않으려 세심히 배려한 책이고, 희망을 담아 쓰인 책이다. 세심하게 청소년을 골라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그 성장기록을 담았다. 여기 나온 청소년들은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을 일궈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로 저자는 각자가 가진 '성찰하는 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물론 모든 청소년이 그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어떤 도움과 지지기반이 필요한지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에서 '성찰하는 힘'을 주제로 빼와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미안한 일이다. 책의 가장 주요한 문제의식은, 학교라는 공간, 기업과 정부,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빈곤가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리소스를 제공하여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자아실현을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것인가, 그들의 존엄을 해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것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독후감을 쓰는 것이었다면 점에 초점을 맞춰서 쓰는 것이 맞았으리라.)


이 책에서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자신을 분리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과 주변인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 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을 통해서 주어진 환경에 그저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삶을 산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주 긴 시간 동안 방황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으리라. 나는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왜'를 포함한 다양한 질문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해 본다. 왜냐면 나는 그랬으니까.




내 청소년기도 온갖 질문으로 덮여있었다. 왜? 나는 종교적으로 자유가 없는 집에서 태어났을까. 종교란 무엇일까? 옳은 일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이것이 왜 싫은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왜 엄마의 말을 듣고 싶지 않은가?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 일을 내가 지금 감당할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이 멈춘 적이 있었나? 단 한 번도 없을 것 같다. 나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혹은 등 떠밀려 갖게 된 것) 중 가장 감사한 것이 이거다. 생각하는 힘. 생각을 멈추지 않는 힘.


그래서 더더욱이나 짝꿍이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가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짝꿍은 대답을 귀찮다는 이유로 더 생각하지 않고 멈추려 하는데, 나는 짝꿍이 생각하지 않으려는 현실에 대해서도 바로 생각을 하고 분석을 시작하고 있으니까.



내가 매주 나가는 공동체 상호상담에서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감정의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사람마다 감정을 다르게 느낀다. 예를 들자면 나와의 약속에 매번 지각하는 친구를 보고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무시당한다고) 느껴서 속상하거나 화가 수도 있다. 후자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무시당한다는 이슈가 다른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얼마 전 가볍게 미래를 상상하는 대화 속에서 우리가 아이를 낳는다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독서와 영어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유산이기 때문에 꼭 어려서부터 기틀을 잡아주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짝꿍은 불쾌감부터 드러냈다.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된다고. 여기서부터 갈렸다. 애초에 왜 뭘 억지로 시킬 것을 전제로 하는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온갖 학원을 다녔음에도 한 번도 억지로 다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아이를 설득할 지부터 상상하는데, 내 짝꿍네 남매는 '가족끼리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하고 강제당하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기 시작한다.


결국 모든 관계의 이슈도 마찬가지다.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은 사실 상대방이 뭘 잘못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그 감정의 뿌리를 찾아내서 성찰하는 작업을 반복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 자신의 무기력, 우울감, 불안과 같은 감정도 사실 하루아침에 생겨나지는 않는다. 패턴이 반복되고 있음을 찾아내고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하지 않고'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내게 "너는 좋은 분석가지만 좋은 상담가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짝꿍에게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있을까.


첫 번째 부부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이야기만을 반복했다.


나는 잘 기다리는 사람이다. 우리 가족이 폭력을 인정하기까지 20년을 기다렸다. 설명하고, 지쳤을 땐 거리를 두고, 시위도 하면서. 내 친구들이 말도 안 되는 감정적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참고 인내하고 사람은 늘 변할 수 있다고 되뇌며 기다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나를 지지해 줄 사람은 누군데?


내 짝꿍이 나와 함께 서툴지만 계속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사람이길 바라는 것이 너무 큰 꿈이라면, 나는 홀로서기를 선택하는 것이 맞지 않나? 기다림 뿐인 삶에 기다림을 더 추가할 수는 없다. 아이까지 추가되기라도 한다면, 더더욱이나 기약 없는 기다림이 늘어날 텐데.


하나쯤은 기다리지 않을 사람을 갖고 싶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그런 사람. 적어도 내가 돌봐야 하는 그런 사람 말고. 평강공주 콤플렉스 같은 거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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