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점심 배식을 도와주시는 실버 봉사 인력이 투입됩니다. 할머님들이시지만 아이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지도해 주세요.”
학년 부장님께서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우리 학교는 식당이 따로 있지 않아서 교실 급식을 운영하지만 1학년은 특별히 실버 봉사 인력이 배정되어 급식지도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드디어 기다렸던 실버 봉사 인력이 도착했다. 주황색 조끼를 입은 두 할머니께서 급식 차를 밀며 우리 반 교실로 들어오셨다.
“얘들아, 앞으로 우리 급식을 도와주실 분들이 오셨어요.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자, 인사드리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큰 소리로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실버 인력 선생님들을 반겼다.
감사하게도 실버 인력 선생님들 덕분에 그날부터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 배식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내가 급식을 받았다. 자리에 앉아서 급식을 먹으려는데 서 계신 두 분이 마음에 걸려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여쭈어봤더니 집에서 먹고 오니까 걱정 말라고 하셨다.
어르신 두 분을 세워놓고 밥을 먹으려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앉아서 식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몇 숟가락을 맛있게 먹었다.
“선생님, 다 먹었어요.”
다 먹은 아이들이 나왔길래 얼른 일어나서 뒷정리를 도우려고 했더니 실버 인력 선생님께서 앉아서 먹던 것마저 먹으라고 하셨다.
“선생님! 뒷정리는 우리가 하니까 걱정 말고 드시던 거 드셔요.”
“앗, 네. 감사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별말씀은 아니었는데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요즘 여덟 살 어린이들에게 점령당한 교실 속에서 혼자 어른으로 사느라 무척 외로웠다. 그런데 더 큰 어른이 나타나 따뜻하게 챙겨주시니 꾹꾹 눌러놨던 힘든 마음이 뭉클 올라왔다.
밥을 다 먹고 정리하는데 실버 인력 선생님들의 연세가 궁금해졌다.
“할머니,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응? 선생님이 별걸 다 물어보시네. 이런 거 물어보시는 분 처음이네그려. 하하.”
“네, 그냥 궁금해서요.”
할머니께서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셨지만 진심 어린 나의 눈빛이 부담스러우셨는지 결국 본인 나이를 툭 던져주셨다.
“응, 나는 칠십아홉.”
“우와! 내년에 팔십 되시는 거예요?"
“응, 그렇지.”
“옆에 할머니 연세는요?”
“응 나는 칠십칠.”
“우와! 쌍칠이네요!”
“응. 맞아요. 쌍칠이야 쌍칠이. 하하하.”
그날 이후 실버 인력 선생님들과 급격히 친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시던 할머니들께서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셨다. 또 며칠이 지나니 브이자를 그리며 나에게 흔들어주시기 시작했다. (할머니들 신날 때 해 주시는 인사법.)
“선생님 많이 잡숴요."
할머니들께서는 밥을 주실 때도 더 많이 주시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잘 먹어야 혀.”
아이들 다 받은 후에 받지 말고 가장 먼저 받으라고 챙겨주신다. 배식 후에도 음식이 남으면 굳이 또 더 주신다.
“선생님이 오늘은 입맛이 없으신 가벼?”
늘 나를 살펴주시는 그분들이 엄마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해서 정말 감사했다. 1학년 아이들과 진을 빼고 나면 할머니들이 보고 싶어졌다. 매일 할머니들은 나의 배와 마음을 다 채워주셨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강요했지만 나는 언제나 ‘할무니’라고 불렀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분들이 오직 내 할무니 였으면 했다. 아이들 지도하기 힘든 날은 유난히 그분들이 더 보고 싶어졌다. 급식 차도 반갑지만 오렌지색 조끼는 더 반가웠다.
묵묵히 살아오신 세월이 묻어있는 손 주름, 느릿느릿 반찬 통을 꺼내주시는 몸짓, 그리고 나에게 흔들어주시는 소녀 같은 브이가 나에게는 다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그분들은 나에게 실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감히 골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 그분들은 실버 인력 선생님이 아니다.
바로 ‘골드 할무니’다.
내일 또 우리 골드 할무니들 만나면 나도 브이 자를 흔들면서 인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