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공개수업 다음 날 아침. 어제 공개수업 후 이어진 학부모 총회 때문에 후다닥 집에 가버린 아이들과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얘들아! 어제 공개수업 어땠어?”
“재미있었어요. 엄마랑 아빠들이 또 왔으면 좋겠어요.”
“또?”
“네!”
“왜?”
“재밌잖아요.”
어젯밤의 나는 소주 한잔 마시는 기분으로 ‘1학년 아리랑’이라는 글을 쓰고 겨우 잤는데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었던 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생레몬을 한입 베어 문 듯한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쓰다고 해야 하나 상큼하다고 해야 하나.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딱 그 지점.)
‘그래 그럼 된 거다. 너희들도 고생 많았다. 잘했다 잘했어.’
겨우 생각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에게 허를 찔렸다.
“선생님 그런데 우리 엄마가 지후랑 놀지 말래요.”
“정말? 왜?” (앗. 이건 또 뭐지? 오늘도 험난한 다섯 고개가 시작된 것인가?)
“지후가 수업 시간에 막 돌아다니고 싸우고 그래서요.”
“맞아요! 우리 엄마는 지후 같은 애랑 결혼도 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방금 전까지 공개수업이 재미있었다고 했던 순수한 아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온순한 양과 같던 아이들은 갑자기 화가 잔뜩 난 앵그리 버드가 되었다. 결국, 앵그리 버드들은 우리 지후의 혼삿길(?)까지 막아 버렸다. 학부모님께서 진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닌지 궁금해할 겨를도 없이 교실의 분위기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곧바로 지후의 표정을 살폈다. 지후는 두려움을 느끼는 표정이었고 그의 동공은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판단 완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나는 작은 불씨가 큰 불길이 되지 않도록 초기 진화에 나선 소방관의 마음으로 소화기 안전핀을 뽑았다.
“얘들아, 너희도 진짜 그렇게 생각해?”
“…”
화를 낸 건 아닌데 교실은 조용해졌다. 때는 이때다 싶어 바람을 등지고 소화기 호스를 불씨를 향해 조준했다.
“선생님이 어제 집에 가서 지후 걱정에 잠을 못 잤어.”
“왜요?”
“너희들이 말한 것처럼 어른들이 지후에 대해 오해할까 봐 걱정이 되더라. 지후가 원래 그런 행동을 하는 친구가 아닌데 어제 잠깐 실수했잖아. 그치?”
“…”
아이들이 말이 없다. 제발 누구 한 명이라도 대답해 주었으면 하면서 더 큰소리로 외쳤다.
“얘들아 그치? 지후 평소에는 안 그러지? 착하지? 그치?”
아이들의 대답이 간절한 나는 거북목을 쭉쭉 뻗었다.
“맞아요. 저번에 지후가 지우개 빌려줬어요.”
후.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거북목 활용해서 미담 사례 하나 겨우 건졌다.
“그래, 어제 수업 시간에 지후가 그렇게 싸우고 나서 엄마, 아빠들이 바로 집에 가는 바람에 선생님이 지후가 그런 친구가 아니라고 말씀드릴 시간이 없었어. 그래서 선생님이 정말 속상했어. 잠도 못 자고.”
“눈물도 났어요?”
울지는 않았지만 울었다고 해야 할 분위기라서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응. (엄청 빠르고 작은 소리로 거짓말.) 그러니까 다들 오늘 집에 가서 지후는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니라고 부모님께 꼭 전해주렴. 그래야 선생님이 오늘은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어. 알겠지?” (하고 싶은 말은 또박또박 큰 소리로.)
“네.”
“선생님 울지도 말고요.” (아, 뜨끔.)
“응응. 안 울게요. 새끼손가락 들고 선생님이랑 약속하자! 선생님 부탁 꼭 들어주기! 알지?”
“네!”
우리 반 아이들은 다시 순한 양이 되어 우렁차게 대답한 후 새끼손가락을 번쩍 들었다.
저멀리 새끼손가락을 든 아이들 사이로 개구쟁이 지후의 눈빛이 반짝였다.
다 타버린 루머(?)의 재 속에서 발견한 생존자를 보니 오늘 사용한 소화기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