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도 못 나왔댄다!"

내가 알던 할머니가 사라지던 밤

by 오르민

할머니의 뇌를 할퀴고 지나간 것은 지독한 열병, 패혈증이었다.


뇌경색 같은 질환일 거라 막연히 짐작했던 것과 달리, 생소하고도 무시무시한 패혈증이라는 병명 앞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80대 후반의 노인이 패혈증이라니. 회복은 가능한 걸까? 머릿속에 온통 불길한 물음표만 가득했다.


응급실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대기할 틈도 없이 응급실 깊숙한 곳으로 옮겨졌고, 119 구급차에 동승했던 나는 얼떨결에 가족 대표가 되어 그 긴박한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의료진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지만, 축 늘어져 있는 할머니를 보고 있으니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덜덜 떨었다.


수액 처치가 들어가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응급 장비들이 할머니 주변을 에워쌌다. 정신없는 와중에 젊은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속사포처럼 상황을 쏟아냈다. 패혈증으로 인한 고열, 빠른 심박수, 그리고 위험할 정도로 낮은 혈압. 숫자로 된 정보들은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빠져나가 버렸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네, 네’ 라고만 대답하다가 의사 선생님의 날카로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당장 기도 삽관(산소 치료 장치)을 할 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한 번 달면 임의로 뗄 수 없습니다.”


왈칵 겁이 났다. 회복하면 뗄 수 있는 게 아닌 건가? 앞으로 평생 그런 장치에 의지해 사셔야 한다는 뜻일까? 이건 감히 손녀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대기실에 계신 엄마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전했다. 곧이어 엄마가 나와 바톤터치를 해서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셨고(구급차, 응급실, 입원실 모두 보호자 1명만 같이 있을 수 있다) 가족들의 짧고도 무거운 논의 끝에 우리는 ‘연명 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은 할머니도 원치 않으실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할머니의 열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졌는데 몸이 약한 엄마를 대신해 내가 할머니 곁을 더 지키기로 했다.


2인 입원실에 할머니와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데, 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독서도 즐겨 하시고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실버 아쿠아 수업을 듣던 할머니가 연명 치료를 논해야 하는 환자가 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할머니가 이대로 돌아가신다면 평생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열이 나기 시작했을 때 왜 동네 가정의학과를 가시라고 했을까?’

‘난 그냥 귀찮았던 거야…’

수많은 후회가 밤새 나를 괴롭혔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할머니와 장례식장에서 엉엉 울고 있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극적인 상상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하셨다.


오전 7시, 병동의 아침이 밝아오자 할머니의 열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고 나중에 다시 검사한 염증 수치도 응급실에 오자마자 검사했던 염증 수치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기운이 많이 쇠하셨지만, 화장실도 내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가실 수 있었다.


분명 체력적인 면에서는 좋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도한 것도 잠깐, 우리 가족은 할머니가 어딘가 ‘이상해졌다’라는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사건은 다인실로 자리를 옮긴 후에 일어났다.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둔 옆 침대에는 상태가 많이 안좋아 보이시는 환자분과 명랑하신 간병인 아주머니가 계셨다. 내게도 손녀가 할머니 돌보느라 고생한다며 본인 간식도 나눠주시며 친절하게 대해주신 분이었다.


어느 오후에, 간병인 아주머니가 환자를 돌보며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셨다.


“엄마(환자분을 엄마라고 지칭하셨다)~ 나는요, 중학교도 못 나왔어요…”


그 순간,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우리 할머니가 눈을 반짝이며 자세를 고쳐 앉으시더니 내게 너무나도 또렷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중학교도 못 나왔댄다!”


할머니는 쿡쿡 웃으며 그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커튼 너머로 다 들리는 크기의 목소리였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할머니께 조용히 하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런 나를 할머니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그분의 학력 이야기만 이야기 하셨다.


내가 알던 할머니는 본인이 대학을 다니던 엘리트라는 자부심은 있으셨지만, 그것을 남과 비교해 깎아내릴 분이 아니었다. 늘 상대방을 배려하고 신중하게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모습은 낯설다 못해 창피하기까지 했다.


옆 침대 간병인 아주머니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난 혼란스러워졌다. 여태 알던 우리 할머니가 아닌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조용하시던 할머니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할머니가 입원하신 기간 동안, 나와 가족들이 3교대를 하며 곁을 지켰는데 아무리 번갈아 한다고 해도 간병인 노릇은 참 힘들어서 금방 피곤해졌다. 그래서 조그만 간병인 침대에서 잠깐이라도 쉬려고 누워 있으면, 할머니는 상대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든 말든 끊임없이 자신의 머릿속을 스쳐지나는 것들에 대해 뱉어내셨다.


뭣보다 밤만 되면 섬망이 심해져서 돌아가신 본인의 아버지(내게는 증조외조부)가 보인다고 하시거나, 곁에 없는 동생들(내게는 이모할머니)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말을 건네고 실감나게 대화를 나누셨다.


간병하던 기간 동안, 내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육체적인 고단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 롤모델이었던 할머니에게서 단 한 번도 상상해 본적 없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는 일이었다.


평생 겸손하시고 상대를 배려하시던, 인격적으로 존경하던 나의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마음 속에 타인에 대한 우월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은 말로 다 못할 서글픈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그 진실을 외면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패혈증이 낫고 지독했던 열이 식으면, 우리가 사랑하던 그 현명하고 사려 깊은 할머니로 다시 돌아오실 거라 믿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가족의 간절함이 빚어낸 지독한 억지 긍정 회로였다는 사실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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