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돌던 시계 하나가 멈췄을 때

상실이 불러온 두 번째 균열

by 오르민

병원에서 폭풍 같은 2주일이 지났다. 우리 가족과 삼촌들이 교대근무 하듯 번갈아 할머니 곁을 지키던 고된 나날이었다. 다행히 할머니의 체력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었고, 우리는 병실 가득 쌓인 짐을 챙겨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남겨졌던 할아버지의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당시 아흔둘이셨던 할아버지는 귀가 많이 어둡고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엄마가 끓여준 죽으로만 식사를 하실 정도였지만, 그래도 꽤 정정하신 편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을 기민하게 읽어내는 인지 능력은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었다. 치매라기보다는 노년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자연스러운 망각이자 고요한 노화에 가까웠다.


할머니가 119 구급차에 실려 가던 그 긴박한 날에도, 할아버지가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당시의 상황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셨던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상황이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온전히 갈무리하지 못할 만큼, 할아버지의 정신은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안개 낀 숲으로 변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의 부재가 길어지자 할아버지는 아내를 찾기 시작하셨다.


두 분의 애틋한 만남을 위해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던 날,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걸까. 환자복을 입고 링거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많이 아파 보이는 아내의 모습을 마주한 순간, 할아버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평생 할머니를 존중하며 존댓말을 쓰셨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친오빠의 친구였던 할아버지는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평생 아내의 곁을 지켰는데, 환자가 되어 나타난 할머니의 모습은 감당하기 힘드셨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어도 독실한 가톨릭 신앙 안에서 아내와 세 자식을 사랑으로 돌보셨던 분.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가정환경에서 자란 우리 아빠가 대학 시절부터 엄마네 집의 그 따뜻한 분위기가 좋아 매일같이 놀러 왔을 정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자체로 ‘화목한 가정’의 상징이었다.


지독한 애처가였던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 뒤 서서히 입맛을 잃어갔다. 마치 아내가 먼저 떠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할아버지의 삶의 의지를 꺾어버린 듯했다. 정작 할머니는 건강을 회복해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할아버지는 급격히 쇠약해지셨고 결국 세 달 뒤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다들 호상이라고 위로했지만, 나는 안다.

할머니의 아픈 모습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무너뜨렸고, 그 무너진 마음이 생의 시계를 멈춰 세웠다는 것을. 할머니보다 7년을 더 사신 할아버지는 그렇게 먼저 길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평생의 짝을 보낸 슬픔을 의연하게 이겨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할머니만의 방식이었을 뿐, 마음속 상처는 깊었다.


늘 옆에서 조용히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할아버지의 부재가 할머니는 영 익숙지 않은 것 같았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습관처럼 옆자리를 향해 방송 내용을 조곤조곤 설명하셨다. 아무도 없는 빈자리를 향한 할머니의 다정한 브리핑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조금 서늘해졌다.


그 상처는 패혈증으로 이미 한 번 고장 났던 할머니의 기억 회로를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일상 속에서 “어, 할머니가 왜 이러시지?” 싶은 순간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떠난 빈자리 위로, 낯선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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