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떠나간 이에게
몇 년 전 겨울 오랜 시간 애정 하던 사람을 떠나보냈다. 분명 어제까지 존재했던 사람이 ‘죽음’이라는 한 단어로 하루아침에 사라진 사람이 된다는 게 비현실적이었다. 너는 어디에 있을까. 사람이 생을 다하면 그 뒤로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걸까. 그래서 만약에, 만약에 우리가 다시 마주친다면 나는 네가 너인 것도 모르고 지나치는 걸까. 나의 혼란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죽음은 기회의 종말이었다.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내가 사랑하던 이를 마주칠 수 없다는 사실과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사무치도록 아팠다. 그에게 ‘긴 시간 애썼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방청소를 하다 그 마음을 담아야 했던 남색 편지지를 책장에서 발견했다. 뜯지도 않아 봉투 그대로 담겨있던 갈 곳 잃은 편지지에 나는 또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참 멍청스러우리만큼 안일한 사람이었다.
요즘도 가끔 떠난 사람에게 DM을 보낸다. 메시지에는 그를 향한 그리움과 당신의 마음이 평안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넘치게 담는다. 이렇게 보내다 보면 왠지 언젠가 ‘읽음’ 표시가 메시지에 뜰 것 같다. 표시가 뜨지 않아도 어디선가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고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라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좋다.
다음에 말하면 된다는 이유로, 오그라든다는 핑계로 직접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괴로워했고 아직도 괴로워한다. 이기적 이유이긴 하지만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 전하고 싶은 감정을 마음에만 눌러두는 것이 아닌, 소중한 사람에게 직접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 별 것 아닌 한 마디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오늘도 열심히 편지를 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잘 지내주면 좋겠습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거창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번 달은 벚꽃이 아름다워서’, ‘다음 달은 빨간 날이 두 개라서’ 이런 소소한 이유들이 한 달 또 일 년을 버텨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길 소망합니다. 언제나 당신을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