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서울
서울에 처음 올라왔던 날이 생각난다. 여름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조금 무더웠던 9월, 나는 서울에 있는 한 출판사에 취업했다. 첫 출근 이틀 전 엄마, 아빠와 밤늦게 상경해 대충 짐을 푼 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아마 같은 고민들을 마음속으로 나눴던 것 같다. 최저시급이 조금 넘는 월급과 그 월급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월세, 자취에 드는 각종 비용들까지 내가 이 도시에 사는 한 계속 마주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말이다. 당장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 문제들을 직접 드러내는 대신 "열심히 살아." "네, 그럴게요."라는 가벼운 대화로 너무 걱정하지 말자는 마음을 서로에게 전했다.
회사에서 다른 팀 사람들과 종종 고향 얘기를 할 때가 있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저는 강원도에서 왔어요"라고 답하면 다들 "이 월급 가지고 여기에 왜 오셨어요?", "어떻게 사세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나도 알았다. 서울에서 이 월급을 갖고 취업을 한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기회는 다 여기, 서울에 있었다. 군 단위에서 살고 있던 나는 그 흔한 토익시험장도 관내에 없어서 버스를 타고 3~40분을 나가야 했다.
그렇게 작은 곳인데 우리 지역에 출판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내가 사는 곳에서 나와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삶을 거부하고 군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회사 사람들을 붙잡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원도에도 그런 게 있어요?" 혹은 "강원도 사람들은 버스 탈 때 진짜 감자 줘요?"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지역 인프라가 얼마나 열악한지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답은 ‘아니오’였다.
서울에 산다는 게 진짜 스펙이 되는구나를 실감한 일이 있다. 퇴사를 하고 진로 고민부터 경제적인 고민까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아보다가 서울에는 나와 같은 청년을 위한 혜택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 혜택 하나를 알게 되자 줄줄이 사탕처럼 함께 달려오는 다양한 제도들에 3년 전의 내가 갑자기 너무 짠해졌다. 고향집에 내려와 오직 유튜브에서만 취업 정보를 알아보던 그 시절의 내가 '서울에 거주지를 둔 청년'이 되니 취업부터 생활까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의 폭이 말도 안 되게 넓어졌다. 일자리 기회, 복지혜택의 기회 그러니까 기회, 오직 그 두음절때문에 이 도시에 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방 청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자신의 젊음과 어쩌면 부모님의 노후까지 담보로 삼고 상경했을 많은 이들을 응원한다.
지방에서 온 우리 모두가 서울이란 도시에서 잘 버티고 살면 좋겠다. 모든 것이 꽉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도시이고 그걸 좇아서 왔지만 공허함과 고독함,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들은 어찌할 바가 없다. 그래서 한때 서울이란 도시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뿌리 없는 나무처럼 느껴졌다. 언제든 누가 툭하고 밀기만 하면 곧바로 쓰러질 나무같이 연약한 존재같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도시에서 나를 지키며 살고 있는 내가 그렇게 약한 사람은 아니겠거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에서 자신을 먹여 살리는 모든 지방러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자신을 키워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강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