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짝사랑

by 여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엄마를 잃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장례의 모든 과정을 참여하기에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염을 하시는 장소에 들어가지 못했더랬다.


그래서 염을 하는 모습을 할머니 장례식 때 처음 참관하게 됐다.


할머니는 곱게 화장을 하셨고 삼베옷을 입고 계셨다. 장의사는 자식들에게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할머니를 쓰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큰 고모는 할머니 머리를, 작은 고모는 할머니 허리를, 막내 고모는 할머니 다리를 문질렀고 낄 틈이 없던 아빠는 여동생들의 인사를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아직도 고모들한테 우리 아빠한테도 할머니와 이별할 시간을 달라고 말 한번 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


잔인한 말이겠지만 그게 딱 아빠와 아빠 가족과의 거리라고 생각했다. 친한 세 자매와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으며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싶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장남, 그게 우리 아빠의 현주소였다.


할아버지는 좀 특이했다. 아들은 오냐오냐 키우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아빠를 거칠게 양육하셨다. 아버지한테 기죽은 아들을 아버지로 둔 우리도 자연스레 할아버지가 어려웠고 무서웠다. 할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셨냐면 한 번은 10살도 안된 나한테 술이 취해 할 말 못 할 말을 쏟아붓기도 했다.(이 일은 부모님이 여전히 모른다.)


나는 여전히 할아버지가 싫고 용서할 수 없다. 본가 지척에 할아버지 댁이 있어도 찾아가 보고 싶지도 않고 할아버지가 궁금하지도 않은 이유다. 하지만 사촌 동생은 명절마다 할아버지 집에 안 오냐고 메시지를 보낸다. 할아버지에게 반말을 쓰고, 할아버지한테 애정만을 받은 너는 절대 이 마음을 모를 거라고 혼자 되뇐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절대 꺼내지 못할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아빠가 본가를 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아빠는 유독 할머니를 애틋해했다. 자기한테 밥을 먹이기 위해 집집마다 돌며 보리밥을 꿔왔다는 에피소드는 아빠가 술만 마시면 꺼내는 단골 이야기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아빠는 본가에 발을 끊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발걸음만큼 독하게 끊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술을 마신다.

할머니도 다정한 성격은 아니셨기 때문에 우리 강아지~라며 손자를 사랑해 주는 조부모의 사랑이 궁금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야 내 부모님이 아니니 조부모님의 애정을 크게 받지 못했다는 것에 그리 큰 아쉬움이 남지는 않는다. 다만 오랜 시간 부모님의 애정과 인정을 갈구한 나의 아빠가 짠할 뿐이다.


나는 절대 아빠가 갈구하는 부모의 사랑은 채워줄 수 없을 거다. 나는 자식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다짐한다. 부모로서 받을 수 있는 사랑만큼은 최고로 주는 것이다. 그래도 텅 비어있는 어느 방문은 절대 열 수 조차 없을 거다.


아빠가 자기 아빠 때문에, 자기 가족 때문에 그만 힘들어하면 좋겠다.

짝사랑을 이제 그만 거두어주면 좋겠다.

그래서 아빠가 좀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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