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이돌 좋아하는데요

by 여니

유구한 덕질의 역사를 어디서부터 읊어봐야 할까. 공주가 돼서 생일파티를 열면 꼭 지오디를 초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7살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아니면 인생 처음으로 공식 팬클럽을 가입하고 콘서트도 다녀온 빅뱅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던 걸까.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하며 수많은 희로애락을 지나온 샤이니부터 올해 공연만 10번을 본 데이식스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까지 사실 내 덕질의 역사에서 어떤 가수도 빼놓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가수가 많았던 만큼 덕질은 곧 내 인생이었고 그것은 현재 진행 중이다.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지독하다고까지 이야기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분명 고등학생 때까지 나와 점심시간, 저녁시간마다 아이돌 뮤비를 함께 보던 친구들은

교복을 벗음과 동시에 아이돌 팬을 졸업했다. 한창 어른인 척하고 싶은 대학생 때는 "우리가 그럴 나이냐? 너도 이제 아이돌 좀 그만 쫓아다녀라" 한 소리 듣기도 일쑤였다. 화가 난 나는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덕질이 뭐가 죄냐는 기사까지 작성하기도 했다.


덕질의 사전적 뜻은 이렇다.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나처럼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자동차, 코스메틱 등 덕질의 대상은 가히 셀 수 없고 덕후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 가장 멸시받는 것은 아이돌과 애니메이션 덕후라고 생각한다. 빠순이, 십덕후 등 우리를 비하는 멸칭 용어도 어쩜 그리 다양한지 모르겠다.


감히 닿지 못하는 존재를 사랑하는 것을 죄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것을 죄라고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하겠다. 예전에는 아이돌을 좋아하면 안 된다고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의한 나이에 덕질을 하는 게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따라다니며 그들에게 힘을 얻는 내가 좋다. 노래 한 곡, 무대 영상 하나로 밋밋하고 납작했던 일상이 순간 사랑으로 흠뻑 적셔지는 듯한 느낌을 사랑한다. 나는 삶에 행복 버튼이 여러 개 있는 복 받은 사람이다.


지난 주말에도 데이식스 콘서트를 다녀왔다. 끝내주게 행복했다. 그리고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밥이 나오지도 않고 떡이 나오지도 않지만 걔네를 좋아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내가 있다. 저들처럼 꿈을 이루고 싶은 내가 있다. 그리고 저들의 음악이 자유롭게 흘러나오는 세상을 위해 응원봉을 들고 시위를 나가는 내가 있다.


다음 주에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페스티벌을 갈 예정이다. 한숨 푹푹 나는 요즘이지만 거기서 근심 걱정 하나 없는 것처럼 헤드뱅잉을 하고 신나게 놀 거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와 나도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먹을 거다.


아이돌과 덕질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