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떨어진 사람의 자괴감 탈출기
우리 엄마는 나를 너무나도 예뻐한다. 내가 엄마 옆에서 잠들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생겼냐며(나는 예쁘게 생기지 않았다) 나의 뺨을 살짝 꼬집어 줄 때마다 엄마의 사랑이 심장으로 느껴져 마음 한 구석 어딘가가 저릿해진다.
우리 아빠도 나를 자기 방식대로 사랑한다. 아빠와 나 사이에는 특이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아빠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이다. 말 수가 적은 아빠가 멀리 떨어져 사는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 때(아빠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은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이벤트 같은 일이다) 아빠가 나를 엄청 보고 싶어 하는구나 슬슬 집에 내려가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내가 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는 이유이자 나를 받쳐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다.
부모님이 주신 충만한 사랑으로 나를 채워가다가도 나 자신이 스스로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면접 탈락 문자를 받았을 때이다. 이 세상이 이토록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를 다이렉트로 알려주는 메시지이자 내가 얼마나 모자란 사람인지의 척도가 되는 그 문자 말이다. 도대체 나를 왜 떨어뜨린 건지, 나의 어떤 면이 부족한 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수학 문제집처럼 면접 탈락 문자에도 오답해설이 별책부록처럼 붙어 있으면 좋겠건만 전적으로 믿을 것은 그 시간을 복기해야 하는 나의 기억력뿐이다.
오늘도 면접 탈락 문자를 받았다. 채용하지 못해 너무 아쉽고 나중에 다시 뵙길 희망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행운을 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나를 나중에 뵙길 희망하시는 걸까? 그냥 지금 뵈면 안 되는 걸까? 하지 못한 말들은 삼키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리고 부모님한테 미안해서 또 울었다. 엄마아빠는 내가 없으면 못 산다는데 왜 세상은 내가 없이도 잘 돌아가는 걸까.
친구에게 '나 면접 떨어졌어'라며 눈물의 셀카를 보내니 '세상에 돈 버는 일은 많아. 걔네 후회할거야' 라는 답장이 온다. 어딘가에 분명 내 자리가 있을 거라는 것은 확신한다. 서울 하늘 아래 그 높고 빽빽한 빌딩 숲에 내 자리 하나가 없을 리는 없을 테니. 눈물을 닦고 내 간절함이 부족한 게 잘못이었고, 나보다 간절했던 지원자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의 쓸모를 의심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해보자며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서 이렇게 글을 쓴다.
그러니까 이건 나를 향한 응원이자 나의 쓸모에 대한 확신이다. 나는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아니다. 그냥 그곳이 내 자리가 아니었을 뿐이다. 계속 두드리면 언젠간 답 할 지어니 쿵쿵 노크를 하기 위해 다시 주먹을 쥔다. 부모님의 사랑을 등에 지고 결국은 나를 향한 자리가 열릴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