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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Jun 04. 2024

중고차 한 대 값을 쓰고도 두 번이나 떨어져?(2)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독일 운전면허

  두 번째 실기시험에서는 왜 떨어졌는가. 시험에 실패한 후 만나는 이들에게 여러 번 설명해야했던 탈락이유. 그런데 재미나게도 아무리 설명해도 다들 즉시 이해하지 못 했다. 나에게는 착각할만하고 안타까운 실수였지만 운전자들에게는 바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나보다. 당신도 그러할까?


  운전선생님은 두 번째 시험에 배정된 시험관이 평소 우리 지역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시험관으로 오는 경우는 아무 드물다면서 어디로 주행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참으로 불안했다. 운전선생님도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흠... 난제로다!


  시험시간도 난제였다. 월요일 오전 8시.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 차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출근시간이 겹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운전선생님에게 물으니 하이델베르크 시내로 출근하는 차량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오 마이 갓! 거기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이 또렷해지기 전이라 집중을 못 하는건 아닐까 그것 또한 걱정이 되었다. 이번만큼은 꼭 합격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Heidelberg Tüv

  독일은 Tüv(튀프)라 부르는 '차량정기검사협회'에서 운전면허시험을 관할한다. 이곳에서 필기시험도 보고, 실기시험도 본다. 정확히 실기시험은 이곳에서 출발한다. 시험 시간 전에 도착해 평소타던 운전학원 차량에 앉아 거울 및 의자를 세팅한 뒤 시험관을 기다린다. 시험시간이 되면 시험관이 등장해 신분증을 확인하고, 차량에 관한 기술적 질문 3가지를 한다. 예를 들어, 타이어는 어떤 요소를 정검해야하는지, 상향등은 어떻게 켜는지, 모터오일은 어떻게 체크하는지를 묻는다.


  기술적 질문 3가지가 끝나면 바로 주행에 들어간다. 시험관이 말하는대로 주행을 하고 다시 튀프로 돌아와 운전에 관한 몇 가지 대화를 나누고, 합격이면 그 자리에서 면허증을 받는다. 시험관을 만나 시험종료까지 총 시험시간은 55분(한 시간도 아닌 55분이다. 이게 독일이다!) 가량. 주행 전후 시간을 제외하면 주행시간은 약 45분 정도가 된다.


  두 번째 시험에서 시험관은 10분 정도 지각했고, 기술적 질문도 2가지만 했다. 그래서 좀 허술한 시험관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쩜 가라고 하는 곳마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길이 좁아서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피해야 하는 길로만 가고, 실수하기 딱 좋은 곳만 골라다녔다. 운전선생님도, 시험관도 조용히 나의 운전에만 집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에 사로잡힌 채 운전을 해야했다.


  난해한 코스를 잘 헤쳐 나갔다. 마주 오는 트럭도 잘 피하고, 좁은 길도 요리조리 피해서 안전하게 통과했다. 좁은 동네를 나와 Landstraße(국도)를 달렸다. 평소 운전선생님과 달리던 곳이라 마음이 편했다. 실기시험에서는 몇 가지 필수과제가 있는데 '급정지', '평행주차', '후진주차', '유턴' 이 네 가지가 주로 나오고, 간혹 '전면주차'나 '우회전 후진주행'이 나온다. 난해한 코스를 지나는 동안 급정지, 평행주차, 유턴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아우토반(고속도로)을 지나 후진주차만 성공하면 실기시험에 합격할 터였다.


  선생님과 달리던 길이라 신나게 달리는데 시험관이 갑자기 이런 지시를 내렸다.


"아우토반을 향해 가세요."


아우토반을 향해?? 여기서부터 마음이 불안했다. 선생님이랑 자주 가던 길이지만 이 길대로 가면 아우토반이었는지 아닌지 확신이 없었다. 표지판을 봤더니 11시방향으로 향하는 화살표 방향에 '아우토반'을 의미하는 파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식은 땀이 나고 동공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저건 좌회전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닌가? 내적 갈등에 가슴이 타 들어가는 듯했다. 고민스러웠다. 미칠 것 같았다. 점점 선택을 해야하는 시점에 다다랐다. 선생님 평소 뭐라고 했던가, '스스로를 믿어라!'  그래,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평소 가던 길로 갈 것이 아니라 표지판을 스스로 해석하고 그 판단대로 움직이자!


  표지판을 지나 좌회전 차선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어랏 뭔가 잘 못 됐다. 좌회전을 해서 들어가는 길목에는 '차량진입금지' 표지판이 서있었다. 거주자만 진입 가능하다는 표지판도 보였다. 나를 괜히 믿었다. 그냥 가던대로 갈 것이지 자체 판단은 왜 했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좌회전을 하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서서 안절부절하면서 시험관에 물었다. 


"어디로 가죠??"

"아우토반을 향해 가세요." 


그의 대답은 똑같았다. 이런 저런 팁을 주지 않은 채 아우토반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보다 못 한 선생님이 오른쪽 직진 차선으로 변경하라고 알려주었고,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레 차선을 변경했는데 시험관이 또 비수 같은 말을 꺼내었다. 


"시험을 종료합니다."


  잘 못을 알아차리고 차선 변경을 했는데 그런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것인가? 시험관이 원망스러웠다. 이 나라 면허 시험이 저주스러웠다. 이토록 철저하게 시험을 보게 하는 독일이 미웠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을 추스르고 기운 빠진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Tüv로 돌아가는데, 두 사람이 휴가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바로셀로나를 다녀왔네, 너는 가봤냐, 좋더라, 어떻더라. 지금 내 앞에서 할 소리들인가? 진짜 어디 좀 들이박을까?


  Tüv에 도착해 오늘 운전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시험관을 보낸 후 선생님과 앉아 다음 스케줄을 조정했다. 2주 뒤에 시험을 봐야하니 다음 주에 운전수업을 하자고 했다. 2주 후면 5월 27일이고, 5월 30일에는 나의 실기시험 가능기간이 만료되는 날이었다. 다음 번 시험에서 합격을 하지 못 하면 필기시험을 다시 봐야했다. 선생님에게 1주일 후에 시험을 보자 했으나 규정상 2주 후에 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야속했다. 여긴 뭐 예외라는게 없나? 


  선생님은 자주 다닌 길인데 왜 거기서 착각을 했냐며 안타까워했다. 알고보니 그 화살표는 좌회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직진차선이 왼쪽으로 휘었음을 의미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더 이상 뭘 더 할 수 있어?"라며 스스로에게 묻듯 나에게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그렇게나 돈 들여 배웠는데 갑작스럽게 판단이 서지 않고 헷갈리면 내 잘못은 아니지 않아?,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정말 답답했다. 뭘 더 해야하는지. 오늘도 실패했다고 어떻게 가족들에게 말할지, 지인들에게 알릴지. 


  선생님과 헤어지고 결과를 기다릴 이들에게 슬픈 소식을 전하고, 기운이 쏙 빠져 삶의 의욕마저 잃은 채 집에 도착했다. 집에 있던 아이들은 태연하게 나를 맞아주었고 '다시 하면 되지, 다음엔 될 거야.'라며 성의없는 듯 싱거운 멘트를 날려주었다. 어떤 호들갑스런 말과 반응보다 덤덤하게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좋았다. 너무 괴로워 울고 싶다고 하니 울어도 된다고 했다. 그 말에 울고 말았다. 반 평생 살면서 시험 때문에 운 기억이 없는데 이 날만큼은 눈물이 났다. 운전면허가 뭐라고 나를 이리 울리나. 나 딸 수 있는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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