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번 아니에요? 당번인데 왜? 이제 와요?”
잔뜩 흥분한 목소리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도, 형식적인 인사도 없었다.
그 여자는 다짜고짜 따지듯 말을 이어갔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왜인지,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당번」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당번’이라는 단어를 기억할 것이다.
교실마다 두 명쯤 정해져 하루 동안 학급의 소소한 일을 맡던 역할.
분필로 가득 찬 칠판을 지우고, 칠판지우개를 털고,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거나 가끔은 수업 중 질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문제의 식을 구해 볼 사람? 아무도 없네? 그럼 오늘 당번이 나와서 해볼까?”
당번은 부담이었지만, 그 역할이 부당하다고 느낄 이유는 없었다.
모든 사람이 한 번씩은 맡아서 해야 하는 역할이었고 하루가 지나면 다음 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당번’이라는 단어는 성인이 되면서 내 삶에서 사라진 줄 알았다.
그 단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첫째 아이가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초등학교 시절,
리틀야구단 소속으로 동계훈련을 할 때 당번이라는 역할이 잠시 존재했다.
강제성이기보다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부모님들이 맡아서 그 역할을 해주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한 달에 한 번, 당번이 지정되었다.
당번의 역할은 부실과 화장실 청소, 아이들의 저녁을 챙기고 식사 후 도시락을 정리하며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시합이 있는 날에는 시합 당번이 따로 있어 아이들 음료와 시합관람 오신 부모님들의 음료 및 방석들을 챙겨 경기장에 가져다 놓고 다시 가져와 정리를 하는 일이었다.
동계훈련 당번은 타 지역 합숙으로 진행될 경우에는 1박 2일 동안 함께 머물며 식사, 빨래, 청소를 도맡는 역할도 포함되었다.
중학교 시절, 당번과 관련된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아이를 혼자 집에 둘 수 없어 당번 날 함께 데려갔다가 야구부실에 아이를 데려왔다는 이유로 혼이 난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이 단어에 대해 의심이나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운동부라는 특수한 환경이고,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돕는 일이라고 스스로 납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숙사 문제를 겪으면서 조금씩 생각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