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지역 학생이었기에 기숙사는 필수였고, 이 학교에서는 학교 기숙사 사용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동계훈련 참여 비용과 학교발전기금 납부를 결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건은 계속 바뀌었다.
학교 기숙사 2인 1실 사용에서 야구부 기숙사 4인 1실로 변경되었고,
이어 학교 공사 문제로 2월에는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아직 이 학교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라는 설명이었다.
결국 1학년은 외부 단기숙소를 알아보라는 통보를 받았고,
2~3학년은 다른 운동부의 기숙사로 이동하게 되었다.
외부 기숙사 이용에 따른 비용과 문제는 각 가정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여기까지는 이해하려고 했다.
입학 전이라는 애매한 신분,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혼란이라고 스스로 납득했다.
문제는 외부 기숙사 이동 과정에서 발생했다.
외부 기숙사로 이사하기 전날이 내가 배정받은 당번 날이었고, 다음 날이 이사 일정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당번 일정이 이사 당일로 변경되었다.
나는 이사 일정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운영진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당번 참여가 어렵다고 전달했다.
운영진은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인한 상황임을 이해했고, 그렇게 이야기는 정리된 줄 알았다.
혹시라도 여유가 생기면 가서 돕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사 당일,
아침 일찍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른 학부모님과 함께 외부 기숙사로 향했다.
청소를 시작해 보니 겉보기와 달리 묵은 기름때와 먼지,
배수관의 음식물 찌꺼기와 곰팡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오늘 저녁부터 사용해야 했기에 주방부터 정리하기 시작했고, 한참을 쓸고 닦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점심이 지나간 무렵 기숙사 문제로 의논하자는 문자를 받았고 정리가 끝나는 대로 짐도 옮길 겸 학교로 가기로 했다.
청소가 끝나갈 무렵 외부기숙사를 함께 사용하는 아이의 부모님이 도착해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4시를 넘기고 있었고 우리는 이 시간까지 밥 먹을 생각도 못하고 열심히 청소를 했었다.
그렇게 식당으로 향했고, 식사가 끝나고 학교로 올라간 자리에서 나는 그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인사도 설명도 없이
“당번인데 왜 일을 안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상황을 설명했고, 운영진에게 이미 전달한 내용임을 말했지만 그 말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돌아온 것은
“총무에게 말한 게 무슨 상관이냐”는 단정적인 반응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자리는 대화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맥락이나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고,
중요했던 것은 오직 ‘1학년 주제에 당번에 나오지 않았다’는
개인적인 감정과 위계였다.
주변의 만류로 더 말하지 않았다.
1학년이라는 위치에서 괜히 문제를 만들지 말라는 조언이 뒤따랐다.
하지만 마음속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단지 위 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방식의 질책을 받아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충분히 설명했고, 운영진과 조율한 상황임에도 그 모든 과정이 무시되는 구조는 과연 정상적인가?
이 ‘당번’이라는 역할은 언제부터 협력이 아닌 복종이 되었고, 언제부터 설명이 필요 없는 의무가 되었을까?
이런 일들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더 문제다.
비일비재하게 반복되기에 아무도 이상하다고 묻지 않는다.
나는 그날,
‘당번’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학교에서 배웠던 그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체계 안에서 아이보다 먼저 상식을 내려놓는 사람이 부모라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