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는 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하나의 단순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반 친구였던 윤우가 리틀야구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3학년인가 4학년 때쯤 제형이가 야구를 하기 위해 감천초등학교로 전학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마음이 한층 더 커졌다.
야구는 아이에게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관심사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야구가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라고 했고 부모가 늘 함께 따라다니며 챙겨야 한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아이에게 매달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 형편과 생활을 생각하면 그건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5학년 가을, 작은 사건이 하나 터졌다.
학교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다툼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야구 방망이에 팔을 맞아 병원에 가게 되었다.
전치 3주 진단.
그 일은 학교폭력 문제로까지 번졌다.
그 일을 겪으며 나는 처음으로 ‘야구를 미루는 게 아이를 위한 일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를 다치게 한 아이가 리틀야구단의 취미반에서 야구를 배우는 아이였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다.
나도, 아이도 묘한 자존심이 생겼다.
“그렇다면 우리도, 정식으로 해보자.”
그렇게 윤우가 다니고 있던 리틀야구단의 취미반에 등록했다.
그때는 운동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나 역시 여러 일들로 바빠 세세히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피아노나 미술학원을 보내듯,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선택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첫 번째 오류였던 것 같다.
취미반은 일주일에 두 번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방학기간이라 아이는 매일 가고 싶다고 했고 결국 나는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선수반은 아니어도, 매일 훈련에 참여하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감독은 잠시 망설이다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그리고는 기존 취미반 회비 10만 원 대신, 매일 참여하는 조건으로 35만 원을 제안했다.
유니폼도 필요하다고 해서 11만 원을 내고 아이의 첫 유니폼을 맞췄다.
그날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처음 리틀야구단에 가던 날…
아이는 이모와 할머니가 마트에서 사 준 글러브를 꼭 쥔 채,
리틀야구단 차를 타고 첫 훈련장으로 향하던 그 뒷모습 아직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