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좋아하는 건 다 해줄게
그런 날이 있다. 늘 하던 밥 짓기가, 청소가, 빨래 개기가 버거운 날.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 한발 뗄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한 날.
“엄마, 아파? 왜 그래?”
눈치 빠른 딸내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없이 식탁을 정리하는 엄마의 수상한 기운을 포착한다. 아이고, 소리만 내도 다다다 달려와서 ‘엄마, 어디 다쳤어? 괜찮아?’하는 다정한 딸.
딸내미의 마음은 두 가지다.
1. 엄마가 아파서 속상하다.
2. 엄마가 아프면 (나한테) 짜증 낸다.
여러모로 딸에게 곤란한 상황이다. 매사 긍정적인 딸은 부정적인 것들을 싫어한다. 친구들과 다투거나, 오빠가 싸우다 울거나, 엄마가 아빠에게 차갑게 대하는 그런 싸한 순간들. 그럴 때마다 딸은 얼굴을 들이밀고 ‘그래도 웃어야지~‘라며 눈웃음을 살살 친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딸내미의 애교를 보기도 전에 침대로 나자빠져 버렸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엄마 조금만 누울게. 머리가 너무 아프네.”
“응, 엄마 쉬고 있어!”
불을 끄고 방문을 살짝 닫아주는 딸내미의 뒷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 딸이 바라보았던 내 뒷모습이 저랬을까.
얼마 큼이나 지났을까. 희미한 음악소리가 거실에서 흘러나온다. 이내 우당탕탕, 하더니 바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엄마, 아직도 자? 어, 일어났네. 잘됐다!”
“미안, 엄마가 깜빡 잠들어 버렸네. 그런데.. 이 음악은 뭐야?”
“쨔잔~~~!! 스타벅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엄마 스타벅스 좋아하잖아. 그래서 내가 엄마 힘내라고 해놓은 건데.”
베란다에 놓여있던 휴대 선풍기와 램프, 아이패드에서 흘러나오는 카페 음악, 그리고 커피. 이것이 딸내미의 ‘스타벅스’였다. 며칠 전 내가 캡슐커피 내리는 걸 유심히 보더니 하고 싶다고 해서 알려준 적이 있다. 그걸 이렇게 써먹는구나. 도대체 너란 녀석은.
우두커니 ‘스타벅스’ 앞에 서 있는 나를 딸이 바라본다. ’아, 이제 살 것 같다.’ 커피를 마시고 내뱉었던 나직한 말을 딸은 마음에 담고 있었다. 어쩌다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딸에게 물었다. ’우리, 스타벅스 갈까?‘ 아이가 무엇을 좋아할까 고민하는 나처럼 아이도 엄마가 무엇을 좋아할까 고민했던 흔적이 식탁 위에 남아 있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기대에 가득 찬 딸의 눈빛이 이글거린다. 엄지를 척하고 올렸더니 행복한 미소를 보여준다. 나는 이 아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여전히 엄마 역할이 벅차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를 다독여주는 것은 딸의 따뜻한 마음이다. 근사한 홈카페로 내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었던 딸의 작전은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