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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밤 Aug 26. 2023

금요일에 먹어요, 피자

불금을 즐기고 싶은 아홉 살


요즘 아이들은 바쁘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가면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아홉 살 딸내미도 예외는 아니다.


딸내미는 일주일에 두 번 영어, 세 번 피아노를 가고 바이올린, 발레, 수영을 한 번씩 간다. 누군가는 다닐만하네,라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럼 언제 놀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가치관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던지 이해한다. 중요한 것은 바람처럼 흩날리는 말들에 휘둘리지 않는 엄마의 신념이다. 아이들 교육에 이토록 굳건한 의지가 있어야 할지는 몰랐지만,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은 그렇다.




직장인이 퇴근시간을 바라며 하루를 시작하듯 아홉 살 딸도 금요일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시작한다. 딸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계속 툴툴댄다. 왜 월요일인 거냐고, 금요일은 언제 오냐고. 그토록 금요일을 기다리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냥. 그냥 금요일이 좋잖아 엄마


딸은 금요일에 영어학원을 간다. 캐나다에서 일 년을 보내고 돌아온 딸은 영어로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그동안 쌓아온 영어실력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영어학원까지 가게 하였다. 딸내미가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고,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카페를 나오면 밖은 어둑해져 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거리에는 금요일밤을 마주한 사람들의 흥분이 떠다닌다. 학원이 끝난 딸의 얼굴에도 홀가분함과 기대감이 묘하게 섞여 있다.


금요일 밤이야, 모든 게 끝이라고!

마주 잡은 두 손을 앞뒤로 흔들거리면서 딸내미는 외친다. 학교, 학원, 숙제로 둘러싸였던 한 주의 끝.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바삐 움직였던 하루의 마지막을 알리는 시간. 금요일 밤은 딸의 일상에 잠시 마침표를 찍어준다.


학원 문을 나선 딸내미는 굶주린 늑대처럼 포효한다. 수업에 가기 전 항상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흐느적거리면서 비틀거린다. 사랑스럽고 배고픈 늑대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알았어. 집에 가면 피자 먹자. 미리 주문할게.“


눈빛을 반짝이며 어서 집에 가자고 저만치 뛰어가는 딸내미. 금요일 밤은 딸에게 축제의 시작이다.




늦은 밤 뜨끈한 피자를 호호 불며 먹는 딸을 보며 회사를 다니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았던 날들. 쉼 없이 시간에 쫓기며 달리던 나는 금요일밤이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야식을 찾았다. 매일밤 자극적인 음식들로 배를 채우며 텅 비어있는 마음을 달랬다. 이상했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졌다. 채워지지 않았다.


혹시… 너도 그때 나와 같은 마음인 거니?


딸의 최애인 갈릭소스가 하얀 바닥을 드러낸다. 먹던 피자를 잠시 내려두고 음료를 한 모금 마시더니 에헴, 헛기침을 한다. 조그마한 입에서 아이의 하루가 흘러나올 준비를 한다.


“엄마,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 쉬는 시간에 남자애들이 쫓아와서 여자화장실로 다 같이 도망갔다니까! 얼마나 웃겼다고~!”


깔깔거리며 웃음 짓는 딸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잠시 옅어진다. 학원을 다니기 전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했기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는 의례적인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발레,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은 나다. 가까운 영어학원을 가보자고 했더니 지금 학원의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했다. 학원에 가면 다시 캐나다에 간 것 같다는 딸의 말에 별 수 없이 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딸의 이야기에 정성껏 귀를 기울여주는 것뿐이다.


내 눈에 아홉 살 딸내미의 일상은 바쁘게 보이지만, 아이는 원하는 것을 배우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친구들과 소소한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금요일밤마다 피자를 찾는 딸내미는 부지런히 한 주를 보낸 자신을 칭찬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닐까.


어떻게 아느냐고? 딸내미 표정을 보면 안다. 또 월요일이냐며 투덜거리는 딸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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