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서 쓴 편협(?)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사는 것은 한국에서 사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에는 그냥 한국에서처럼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이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주거지가 이동되는 것 정도의 변화말이다. 여행을 좋아했기에 여러 나라를 경험해봤다는 어줍지 않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 덕분에 해외살이라는 용감한 결단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땅과 기후, 다른 문화 속으로 던져진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해외살이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조금 더 컸던 것 같다. 설렘으로 시작한 말레이시아 생활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그 소소한 일상을 끄적여본다.
후각을 자극하는 열기
말레이시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이곳이 타국이라는 곳을 강렬하게 인지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창문을 열 때 훅~~~ 하고 들어오는 더운 열기다.
아침마다 딸아이가 문을 열며 했던 말. "엄마, 열대지방 냄새가 나요. 우리 여행 갔을 때 맡았던 냄새 있잖아요. 바로 그 냄새예요!" 그 얘기를 듣고 "딸, 여기.... 열대지방이야..ㅋㅋㅋ", " 아! ㅋㅋㅋㅋ". 이렇게 내 몸의 한 감각인 후각을 통해 매일매일 비로소 내가 한국이 아닌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말레이시아의 기후는 어떤가
말 그대로 열대지방 날씨다. 스콜(절대 밖에서 걷다가 맞으면 안 되는 비다. 순식간에 벌어지니 외출 시 작은 우산은 상시 준비)이 있는, 한마디로 1년 내내 더. 운. 나. 라.
한국은 4계절이 있는 나라다. 봄과 가을이 짧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를 모두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웬 사계절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사시사철 더운 말레이시아에서 있다 보니 문득문득 봄, 가을, 겨울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개나리와 벚꽃,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봄날 꽃길, 온갖 산을 물들이는 단풍, 그리고 군고구마가 생각나는 겨울. 여기서는 그냥 쪽~~~~~여름이기에..
이곳도 미묘한 날씨의 변화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어느 달에는 아침 저녁 서늘함이 느껴지고, 어느 달은 아침부터 그냥 푹푹 찌기도 한다. 우기와 건기가 있다고도 들었지만 솔직히 나는 잘 구분을 못한다. 여행객으로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그러한 날씨의 미묘한 변화는 여행의 추억 한 자락쯤에 있는 정도였다. 여행의 즐거움이 그깟 날씨나 계절 따위에 굴할쏘냐...ㅎㅎ 오히려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날씨가 만들어준 다양한 에피소드는 여행의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실제 이곳에서 살아보니 계절의 변화는 단순히 기온과 날씨 등이 바뀐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한 해가 바뀌어 연초의 경우 한국에서는 보통 추운 겨울이다. "해피 뉴 이어~~" 혹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늘 겨울이라는 계절과 함께였다. 추운 겨울에 새로운 해를 맞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는 크리스마스도, 신년을 맞을 때도 항상 더운 날씨다. 뜨거운 햇볕 아래 놓인 크리스마스트리라니! 여전히 적응안되는 어색한 풍경이다.
한국에서는 추운 겨울의 새해를 지나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이 되면 학교들이 새 학기를 시작한다. 비록 내가 학생이 아닐지라도 왠지 봄이 되면 차가운 바람을 이겨내고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이 나의 일상도 다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의지를 다지곤 하였다. 매년 봄은 그런 의미였다. 물론~그러한 의지가 의지박약으로 인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봄이 지나 여름이 오면 녹음을 보며 뜨거운 땀을 흘리며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았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 올해도 반쯤 지났구나'. 그런데 그것도 잠시. 쌀쌀한 날씨에 피부가 갑작스럽게 건조해지고 입술이 트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핫 커피가 더 당기기 시작하면 나는 새로운 계절을 또 만났다. '가을이군. 이제 하반기에 접어드나 보다'. 그때쯤 '헉~' 하면서 달력을 넘기며 그동안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한번 살짝 조여주고 또다시 종종거리며 일상을 살아냈다. 그러다 어느 날 코트를 꺼내고 겨울옷들을 죄다 장롱에서 꺼내 또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았다. 그렇게 온 겨울의 찬 바람을 느끼며 '아!(아마도 탄식ㅠㅠ).. 올해도 이렇게 가는 건가. 나 또 한 살 먹는 거야? 한 것도 없는데 1년이 갔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아주~잠시 후회). 그러나 '또다시 봄은 온다'며 굴하지 않고 다음해 계획을 짜곤 했다. 이걸 핑계로 예쁜 다이어리도 구입하고 나름 야무지게(?) 겨울준비를 하곤 하였다.
이렇게 나는 아주 익숙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사계절의 변화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며 살아왔다. 일년내내 여름인 국가에서 살아보니 계절의 변화가 생각보다 몸과 마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가장 크게 바뀐 환경의 변화 중 하나가 바로 계절이었기에.. 특히 말레이시아처럼 열대지방 국가에서 산다는 것은 여름을 좋아하지 않던 나로서는 이 계절과 날씨에 열심히 적응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냥.. 덥다. 또 덥다는 생각을 할 때쯤 한바탕 비가 쏟아진다. 엄청난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하고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내리기도 하는 스콜. 이 비가 지나가면 뜨거워진 열기를 한풀 꺾어놓는다. 처음에는 이곳의 날씨를 예상하지 못하고 우산도 없이 나갔다 스콜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비가 쏟아진 관계로 5분 거리지만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덥다..
스콜이 오기 직전 하늘 모습때때로 밤새 무섭게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어찌나 요란하게 오던지. 말레이시아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그 빗소리조차 덜컥 겁이 났다. 이제껏 내가 살아온 환경과 다른 낯선 날씨는 때때로 별것 아닌 것에도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지금은 이곳 기후에도 제법 익숙해졌지만 비 온 뒤 밀려오는 후각을 자극하는 비릿한 바람의 냄새는 '아, 나 지금 말레이시아에 있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만든다. 지금은 하늘을 보고 먹구름이 보이면 '스콜이 오겠군', '지나가는 비겠어' 혼자 되내이며 여유를 부리지만 그렇다고 이곳 날씨에 완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
한국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알레르기로 고생했다. 원래 알레르기 따위는 없었는데... 나이가 들고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없던 알레르기가 마구마구 생기기 시작했다. 참... 짜증스럽고 괴로운 일이다. 눈과 코의 간지러움은 정말 미치고 팔딱일 정도였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고통을 아시리라.
그런데 말레이시아에 오고 난 후 알레르기를 겪지 않게 되었다.(참고로 여기 공기가 항상 좋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보다는 미세먼지가 적은 것 같다)
비록 이곳에서 땀을 많이 흘려 모공이 콧구멍(?)만 해지고.ㅠㅠ 피부는 얼룩덜룩 검게 그을렸지만(치명적인 단점일지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눈과 코가 간지러워 병원을 가고 약을 먹어야 했던 과정을 겪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새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또 다른 장점. 가을과 겨울이 되면 건조한 피부로 수분크림이며 영양크림이며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댔어야 했는데 여기서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 그것 또한 편하다(물론, 피부 관리하시는 분들은 이곳서도 한국과 같이 관리하시겠지만.. 난 귀차니즘에 가까운 인간인지라... 선크림 하나면 충분하다. 다만 날이 흐리다고 선크림도 안 바르고 나갔다가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반드시 기억하자!)
그러나 장점만 있을 리가... 첫 번째 단점.
앞서 말한 듯이... 순식간에 피부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점.
선크림은 늘 바르고 다니지만... 땀으로 금방 지워지기 마련이고.. 발라도... 안타는 건 아니기에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말이다. 이곳의 햇살은 생각보다 정말 강하다. 날이 흐리다고 방심하다간 내 피부를 지킬 수 없다. '상기하자! 선크림!'
피부에 민감한 사람들은 관리가 필수다. 거기다 코로나로 더운 이곳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너무너무너무 괴로웠지만...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다는 걸 난 이곳에서 확인했다. 내 온몸으로!
열대지방에서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외출할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나같이 뚜벅이들은 말이다. 마스크 안에 땀이 차고 땀이 흐르면 순~간 돌아버릴 것 같기 때문에. 그러한 고충을 감내하고 외출을 준비해야 한다.(지금은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었지만, 지난 2년여 동안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가장 큰 단점은(이건 어쩌면 나만이 느끼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정확히는 시간이 그냥.. 휙~~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랄까. 새해가 시작된 것 같은데 어느새 5월,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니 10월... 헉~~~
특히 매일의 일상이 똑같은 나는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어느새... 몇 달이 훌쩍 지나가버리곤 하였다. 계절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시간의 변화를 느끼는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아님 무뎌지게 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영향이 있는게 분명하다.
그리고, 왜!! 한국의 봄과 가을이 사무치게 그리운 건지(참고로, 나 감수성 있는 여자 아님. 한국에서는 그런 것에 관심 일도 없었음ㅠㅠ 늙어서 감정선이 바뀌고 있는 것인지. 불쑥 올라오는 감정에 당혹해하고 있는 중. 혹시 갱년기?? 향수병? 설마?? 그냥 나이보다는 계절 탓이라고 해두자)
내가 언제부터 가을의 단풍을 그리 좋아했다고.. 단풍이 보고 싶고. 봄에 피는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그립고. 꽃피고, 단풍지는 한국의 소식을 들으면... 혼자 울컥~하며 맥주를 따게 된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 진짜, 왜 이러지?' 하며 지난날의 추억을 소환해 가을의 풍경과 봄꽃들을 떠올려본다. 그땐 그게 이리 그리워질 줄 몰랐고, 그렇게 또 나에게 주어질 계절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 것들이 사실 하나도 당연한 것이 아닌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것도 타국에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타국에서 살다 보니 향수병이 생긴 것인지, 계절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평범한 일상이, 그냥 지나쳤던 가을 단풍이, 무덤덤하게 지나갔던 길가의 봄꽃들이 떠오르는 날이면 널을 뛰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오늘도 그렇게...더운나라, 낯선 곳에서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