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살아남기(2)

여기는 이슬람 국가- 슈퍼에서 생긴 일

by 주인공

-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서 쓴 편협(?)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는 곳만 한국에서 말레이시아로 바뀌었을 뿐인데 처음에는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우선 한국어가 통용되지 않는 외국이라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고, 사는 곳 근방의 지리를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행을 다닐 때는 겁도 없이 길거리 음식도 사 먹고,

여기저기 쏘다니며 하나라도 뭔가 더 경험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가지고 미친 듯이 쏘다녔던 나.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매일 긴장의 나날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 아는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 등등 여러 요인들이 짬뽕처럼 뒤섞여서 한동안 나는 특히 밖을 나갈 때면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이곳에서의 일상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 학교 보내고, 장보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등등.

코로나 때문에 쇼핑몰은 아예 가보지도 못했고..(사람 많은 곳에 대한 거부감이 생길 지경.ㅠㅠ) 처음에는 그냥 무서웠다. 여기서는 난 그냥 외국인일 뿐이니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는 일념으로 버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해외살이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지 않은가!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상황이라니. '이거 실화냐?'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그렇게 고난의 해외살이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한 일상은 계속되는 법. 아직 재래시장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에 나는 주변의 큰 슈퍼들을 이용했다. 내가 자주 가는 슈퍼는 자야 그로서리((Jaya grocery), 빌리지 그로서리(villagegrocery) 그리고 간간히 들르는 한인마트 등이다.


슈퍼에서 장보는 거야... 어디서나 다 똑같지만. 이곳은 특이한 점이 있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라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는 것.


거리를 걷다 보면 히잡을 쓴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무슬림이다. 모스크에서는 하루 중 일정한 시간에 종소리(?) 기도 알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소리를 내보낸다. 말레이시아의 종교적,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교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사실 이슬람문화에 대해 나는 거의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종교에 기반해 있는 이들의 문화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부끄럽지만 할랄 음식 있다는 것도 말레이시아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준비과정에서 이곳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서 많은 조사를 할 시간이 없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두고 찾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까지 이런저런 경험을 해가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슈퍼에서 살 수 있는 가공된 먹거리들은 대부분 할랄 표시가 되어 있다. 무슬림들은 할랄 음식을 먹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건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기억은 가물하지만 세계사 수업시간에 분명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럼 뭐하나.. 이렇게 완전히 잊고 있었는걸ㅜㅜ


돼지고기에 얽힌 민망한 에피소드

그날 나는 슈퍼에서 열심히 돼지고기를 찾고 있었다. 딸아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 해서 장바구니를 들고 씩씩하게 슈퍼로 향했다. 슈퍼에 들어가 양파며 토마토, 계란이며 메모해온 것들을 하나씩 카트에 담고 마지막으로 돼지고기를 찾아 정육코너로 갔다. 소고기와 닭고기가 부위별로 아주~잘 정리되어 있었다. 한참을 찾았지만 아무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육코너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돼지고기가 보이질 않는다.


'다 팔렸나.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없지? 이상하다'

물어봤으면 되었을 것을. 슈퍼에서 설마 돼지고기를 못 찾겠냐 싶은 마음에 계속 그 근방을 돌고 또 돌고... 정육코너에 원래 다 모여 있는 거 아닌가 이 생각만을 고집하며 돼지고기를 찾고 또 찾았다.


'안 파는 건가?' 좀 찾아보다. '아.. 모르겠다. 오늘은 돼지고기 김치찌개 말고 다른 거 해야겠다' 하고 그냥 포기. 그때는 슈퍼 탐색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돼지고기를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채소의 위치는 어디인지, 냉동식품은 뭐가 있는지, 과일은 어디에 있는지 가격은 어떤지, 싱싱한지 등등 앞으로의 장보기를 위한 워밍업 중이었달까. 그것에 만족하며 에너지를 집중했다. 장보는 게 뭐라고.. 참 비장한 마음이었다. 냉장고를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 한다는 일념. 락다운(lock down)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장보기는 쇼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마스크에 라텍스 장갑까지 끼고 마치 전투를 나온 군인처럼 나는 그렇게 슈퍼를 종횡무진했다. 냉장고에 비축해둘 식량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비록 돼지고기는 못 찾았지만...


"장보는 것이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마트 장 보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단연코 그럴 일이다. 처음 보는 채소도 있고(여긴 말레이시아. 이곳에서 나는 채소 중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포장지에 쓰여 있는 이름들을 보며 다양한 재료들 사이에서 내가 사고자 하는 것들을 찾아 담아야 한다. 한국의 채소와는 다르지만 사용할 수 있는 채소는 무엇인지 이름을 검색해가며 학습해야 한다. 이런 장보기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는 소스와 채소, 새로운 상품이 보이면 인터넷을 검색하며 열심히 정보를 탐색한다. 지금은 채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는데 생선류는 오징어, 연어, 조개류 외에는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처음 본 생선들이 보이지만 애써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슬프게도.. 그런데... 돼지고기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이냐?


나중에 알고 보니, 돼지고기류, 술 등을 파는 코너는 다른 곳에 있었다.(그렇게 돌고 돌고 또 돌았는데 왜 찾지를 못했던 것인지. 지금도 알다가도 모르겠다ㅜㅜ) 아예 파는 곳 자체가 구분되어 있었기에 아무리 소고기 닭고기 파는 곳을 기웃거려봤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코너만 찾으면 간단한 것인데, 돼지고기 파는 곳이 다른 곳에 별도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그토록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찾은 게 다가 아니었다. 처음에 돼지고기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목살과 삼겹살을 사 가지고 계산대에 가서 다른 식료품들과 같이 떡~~ 하니 올려놓으니 계산을 해주는 언니가 돼지고기 팩을 가리키며 뭐라 뭐라 한다.'아... 뭐라는 거냐..' 살짝 멘붕이 와서 멀뚱히 서있었더니. 매장의 다른 직원이 와서 그 돼지고기의 바코드만 찍고 돌아간다. '뭐지 이 상황은?' 살짝 당황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산대만 응시. 다행히 그 외는 큰 문제없이 나머지 상품들은 계산대에 있던 캐쉬어가 결재를 했기에 나는 끝까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몇 번 비슷한 상황을 반복했는데(물어보았음 되었을 것을... 참 나란 사람..) 어느 날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레카!!!!'


돼지고기와 술을 파는 곳은 그것을 계산하는 계산대가 따로 있다!

(계산대를 보았는데.. 난 왜 그것을 몇 번이고 지나쳤던 것일까. 참 무디다) 그리고 그곳 계산대에 사람이 없어 계산을 못하는 경우 메인 계산대에서 돼지고기를 결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경우 혹시 직원이 무슬림인 경우(히잡을 쓴 여성들의 경우) 돼지고기에 접촉할 수 없기에 캐쉬어가 바코드를 찍을 수 있게 도우면 되는 것이었다.


지난번 나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무슬림인 캐쉬어(casher)는 돼지고기를 터치하지 않으려고 나에게 뭐라 뭐라 애기한 것이고 내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지나가던 다른 종교를 가진 직원이 대신 돼지고기의 바코드를 찍어주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대단한 정보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두둥~~~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선 경험은 매번 나를 계산대 앞에서 위축되게 만들었다. 내가 뭘 이해하지 못한 건지 몰랐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멘붕이 올 일도 아니었는데 일상이 긴장의 연속이었던 그때의 나는 멘붕. 민망한 경험담이긴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이슬람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알아야 또 다른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ㅠㅠ


그것도 모르고.. 무작정 계산대에 올려놓고 돼지고기를 들이밀었으니 캐쉬어도 상당히 황당했을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아~~ 문화가 이렇게 다른 거구나.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 먹지만 않는 게 아니라 터치도 하지 않는구나' 하며 마치 대단한 정보를 알아낸 것처럼 딸내미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이곳 문화를 잘 알지 못해서 겪은 민망한 에피소드이지만 내게는 말레이시아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든 소중한 경험이다.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교이다. 국민의 다수가 무슬림이다. 국교는 있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것에 대해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무지는 사소한 실수를 범할 수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상당한 무례가 될 수도 있다. 슈퍼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것은 바로 이점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정말.. 나만 몰랐던 것일까ㅜㅜ) 이런 것도 몰랐냐고 타박을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거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난 슈퍼에서 이곳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배움을 가진 셈이다(이렇게 합리화를 하네요) 앞으로 또 몇 번의 멘붕을 겪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타국에서 산다는 건~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다.

"난 외국인이니까 괜찮아"가 아니라 "난 외국인이니 이곳의 문화를 이해해야 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렇게 오늘도 무사히... 말레이시아에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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