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서 쓴 편협(?)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살면서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주저 없이 "도마뱀"이라고 말할 거다.
내가 사는 콘도(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한 형태지만. 아파트처럼 여러 동이 모여있거나 하지는 않은 형태) 10여 년 정도 된 콘도이다. 관리가 잘 된 편이고, 특히 집주인이 관리를 잘한 편이어서 깨끗하고 좋다.
처음에 이곳에서 집을 구할 때 인터넷 등을 통해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콘도라면 저층보다는 고층이 더 낫고, 창문에 모기장이 설치되어 있는지, 차가 많이 막히는 지역인지, 아이 학교와의 거리는 어떤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처음에 집을 볼 때는 알고 있는 정보도 잘 조합이 안되었다. 부동산 에이전시가 영어로 얘기하면 집을 보는 게 아니라 듣느라 정신 팔리고 괜찮다 싶으면 가격이 안 맞고.. 한국이나 말레이시아나 살집을 구하는 문제는 역시나 만만한 일이 아니다. 거기에 주인도 잘 만나야 하고.
아무튼 난 고층을 좋아하지 않기에.. 5층 정도의 집을 구했고, 다행히 집주인이 이미 창마다 모기장을 다 설치해주어 그것도 만족. 가스는 도시가스라 그것도 괜찮았고.. 차는 근처에 국제학교가 있어 조금 막히지만 난 운전을 하지 않기에 그것도 괜찮았다. 가까운 곳에 병원과 슈퍼도 있으니 불편함이 없고 나름 잘 선택한 집이었다.
이곳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전세라는 개념은 없는 듯하고. 매달 월세로 렌트비를 집주인에게 지불해야 한다. 계약도 보통 에이전시를 통해 하게 된다. 집주인과의 연락은 보통 에이전시를 통해서 하게 된다.(집주인에 따라 연락처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나는 처음에 집주인 연락처를 몰랐다) 처음에는 이렇게 연락하는 것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집에 문제가 생겼는데 에이전시에게 연락하고 주인의 답을 기다리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이러한 방식에 무척 답답했었다. 그 와중에 렌트한 집은 꾸준~히 계속~ 잊을만하면 문제가 하나씩 생겨 집을 구하고 몇 달 동안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나는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주인이 연락을 안 될 때에는 속이 터진다.
잘 고른 집이라 생각했는데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누수되어 한바탕 공사를 했다. 안방 화장실 천장 누수를 해결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화장실 천장에서도 물이 떨어진다. 지금까지 누수공사만 3번. 1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한국에서는 운이 좋았었는지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일을 여기서는 1년에 3번이나 겪었다.(모든 집이 그러진 않아요. 좋은 집들도 많아요!) 그거야 한국에서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니 하고 어떻게 저떻게 그냥 잘 넘겼다. 아니 잘 넘겼다고 생각했다.
도마뱀? 우리집에?
암튼.. 집안 곳곳에 여러 하자들이 발생하고 있던 그 와중,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하던 어느 날
딸내미가 화장실에서 소리를 지르면 뛰어나온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놀라는 마음을 부여잡고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왜?, 왜?" 그랬더니..."엄마!!!~~~~~~~엄마!!!!! 도마뱀이에요!!!!"
그 이후의 상황.. 짐작하시는 그대로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소리 지르고... 우왕좌왕... 빗자루를 들었다.(아니 이걸 도대체 왜 들었을까. 도마뱀 잡으려다 집안 다 부술 뻔ㅠㅠ) 이걸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도구를 찾고 있던 그 사이... 도마뱀은 아주 유유히 천장의 에어컨으로 사라졌다. "에어컨으로 들어간건가?", "안돼!!!!, 어떻게 저리로 들어갈 수 있지?"
아.... 그때의 절망감
한동안 당연히 에어컨은 켜지도 못했고ㅠㅠ(한 이틀 동안 찜통의 거실을 경험했다. 알다시피 여긴 열대지방)
방에서 나올 때마다 도마뱀 없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특히 벽과 천장을 집중적으로 스캔~
불이란 불은 다 켜놓고 자고
어디서 무슨 소리만 깜짝 놀라 혹시 도마뱀 소리가 아닌가 겁을 먹었다.
여행을 다닐 때는 간간히 만난 도마뱀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았는데(물론 그때는 실내에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집안에서 마주한 도마뱀은 왜 그리 무서운지.. 나보다 한참이나 작은 동물인데 공포심은 거의 바퀴벌레 급이었다.
어떤 분은 도마뱀은 해충도 잡아먹고 사람에게는 해가 되지 않으니 괜찮다고 위로를 했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런데 막상 실체를 보면 그게 그렇게 괜찮지가 않다. 귀엽다는 분도 있지만 나는 암만 봐도 귀여운 구석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도마뱀에 너무 호들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직접 마뱀씨를 영접하면 순간 얼음이 되고, 입에서는 괴성이 나오는 걸. 온몸이 그렇게 반응을 하는데 어쩌겠는가.
나의 일상 공간 그 어딘가에 함께 하고 있을 도마뱀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나도 듣기만 했지. 이게 막상 내 상황이 되니 참 적응이 되질 않더라.
우선 급한 대로 한인 커뮤니티에 도마뱀 퇴치법을 물었다. 슈퍼에 약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정보를 얻자마자 바로 한달음에 슈퍼로 향했다.
가보니 정말 뿌리는 도마뱀 퇴치 약부터 끈끈이까지 다양한 퇴치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헉!!!!! 끈끈이라니! 저건 우리나라 60~70년대 쥐잡이를 할 때 썼던 것 아닌가!
그런데 저기에 잡히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지? 그걸 어떻게 치워야 하지? 그 이후를 생각하니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질 않아 그 방법은 포기. 그냥 뿌리는 약을 사 왔다. 집 주변에 뿌리는 약인 듯했는데 '안되면 직접 뿌리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구매했다. 그나마 그거라도 사놓으니 마음이 다소 안정되었다.
슈퍼에서 구입한 도마뱀 스프레이. 내가 만난 도마뱀이 딱 저렇게 생겼더랬다.
도마뱀 관련 퇴치 약을 사와 집 주변에 뿌리고 창문 단속도 하고...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잊을만할 때... 또 출현하셨다... 작은 새끼 도마뱀이 천장 벽면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신다. 거실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그대로 숟가락을 팽개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순간 머리가 띵하다. 말로 표현이 안된다. 책에서나 보던 파충류가 또 내 눈앞에 가까이 있다니!
'저 도마뱀은 온전히 내가 처리해야 한다. 반드시! 안그러면 오늘 밤 잠자는 건 포기해야 해. 할 수 있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뱀씨가 있는 그곳으로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내딛었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손이 덜덜 덜덜.. 무슨 수전증 환자 마냥..
우선 마뱀씨를 향해 슈퍼에서 사 온 약을 뿌렸다. 기절이라도 하길 바라면서. 그런데 이런 젠장! 전혀 반응이 없고 더 팔딱팔딱 잘만 도망간다.
심지어
내가 살짝 건드렸더니 꼬리를 자르더라....'하아~' 탄식이 나온다.
'ㅁㅊ 도마뱀 ㅠㅠ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꼬리까지 자른 끔찍한 모습을 보이는 게냐!!!'
그런데... 설상가상 그 잘린 꼬리가 앙증맞게 움직인다. 잘린 꼬리가 움직이다니. 이게 무슨 호러 무비인지.
"악!!!!!!!!!!!~~~" 정말 현기증에 휘청였다.
아마 우리 콘도 같은 층 사람들은 우리집에서 무슨 큰일 난 줄 알았을 거다. 그러나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인생 최초로 도마뱀과 정면승부를 하고 있었으니.
오버라고 하지 마시길. 본인이 겪기 전에는... 크기.. 색깔.. 촉감.. 크흑..ㅜㅜ 앗! 상상하지 말자!
'아........ 미친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머리는 하얘지고 손은 덜덜 떨리고.... 무서워서 눈물도 찔끔 나고..
작은 빗자루 같은 것으로 어떻게 어떻게 밀어냈는데... 빗자루로도 도마뱀의 촉감이 전달된다. 순간 그 촉감에 머뭇거리던 사이 마뱀씨가 현관문으로(아주~~~ 작은 틈이었는데) 쑥~~나가버렸다.. 나간 건지 숨은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나갔다고 믿고 싶었다. 우선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나갔다고 생각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갑자기 눈물이 난다..'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손은 덜덜 떨리고. '내가 미쳤지.. 여길 왜 와서는 이 꼴을..' 입으로는 혼자 중얼거리고.
이게 울 일이야?
울 일이다. 진.. 짜.. 무.. 서.. 웠.. 다.
문제는 마뱀씨가 다음에 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말인 즉, 매일매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 녀석에 대한 두려움을 견뎌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면 무섭지만 그러려니 하고 마뱀씨를 받아들이던가.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우리 집에서는 '마 뱀 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럼 조금 덜 무서울까 싶어서. 그런데.. 그런건 전혀... 상관없더라. 어떤 귀여운 이름을 붙인다 한들 안 무서울까. 그냥 스스로 견뎌내기 위한 발버둥일 뿐)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울 일이 아니다. 평상시의 나라면..
그 눈물은.. 그간 겪었던 여러 일들에 지친 내가 마뱀씨를 핑계로 폭발한 것이다.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잘 참아왔는데 마뱀씨의 터치로 한순간에 툭~ 터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나 보다.. 다시 주섬주섬... 정신 차리고, 빗자루 들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구석구석 찾아보고 문단속하고. 흐트러진 상황들을 수습하였다. 마음을 토닥이며..'놀랄만했어. 그래도 잘 대응한거야. 나갔으니 된 거야.'... 토닥토닥토닥토닥. 울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 마음.
그 이후로... 한동안 보지 못했다.. 누구를? 마뱀씨를..
그러나... 곧 또 등장하였다. 잊을만하면 화장실에서, 혹은 다용도실에서.. 심지어 아침에 문을 나서는데 현관문 앞에서 정면으로 마주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떠냐구요. 마뱀씨를 보면?
억지로 그 존재를 인정하는 정도까지는 적응했다. 그러나 인정을 한다고 겁이 안나는 건 아니다. 아직도 나는 마뱀씨가 무섭다. 그냥.. 제발 내 눈에만 띄지 말아 주길 바라고 있다.
(살다 보니. 작은 틈으로 도마뱀 새끼는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거였다. 모든 틈을 막을 수는 없으니... 어쩌면 애초부터 우린 공생을 해야 하는 관계였는지도..)
상상해보라!
우리집 어딘가에 도마뱀이 살고 있다고.
그 도마뱀은 색도 다양~~~ 하더라. 갈색인 애도 있고, 노란색(?)에 가까운 애도 있고 게다가 크기도.. 제각각이다. 새끼손가락만 한 아이부터 팔뚝만 한 것까지. 다 만나봤다. 다행히 더 큰 아이는 아직까지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또 어떤 마뱀씨를 만날지 만날 때까지는 알 수 없다. 작은 마뱀씨면 그나마 다행이다. 안 만나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 사는 동안 그건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냥 적응. 또 적응...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야기 한 김에 어딘가에 있을 마뱀씨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마뱀씨에게
마뱀씨 안녕. 난 한국에서 온 아줌마야.
가끔씩 만날 때마다 소리 지르고 놀라서 미안해. 근데.. 내가 마뱀씨가 익숙지 않아서 그런 거라 이해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그냥.. 제발 내 집에 들어와 살더라도 마뱀씨...내가 눈감아줄게. 다만 내가 널 볼 수 없게. 그리고 제발 날 만날 때 꼬리는 자르지 말아줘.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들어. 그냥 인기척이 나면 최대한 빨리 샤샤샥~움직여주면 좋겠어. 너도 날 만날 때마다 놀라서 얼음이 되잖아. 당분간 서로가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나도 노력해볼게. 그리고 가끔 모기 좀 잡아주면 고맙겠어. 모기장이 있어도 꼭 들어오는 모기들이 있더라고. 맛은 장담 못하지만 좋은 간식이 될거야. 그리고 우리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날 '안녕?'이라고 여유 있게 인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나에게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그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좀 해보자고. 그럼 부탁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