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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줍음 Jul 16. 2023

꿈 많던 스물다섯 살, 꿈을 포기하고 아이를 품다!

스물다섯 살, 대학을 졸업하던 해

<2>  꿈 많던 스물다섯 살, 꿈을 포기하고 아이를 품다!


1999년, 대학졸업 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D관세사무소라는 곳에 인턴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학과로 채용의뢰가 들어왔을 때 영어를 잘하는 여학생을 찾는다고 했다. 내 영어실력이 출중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대 특성상 영어를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내가 추천을 받아 취업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3개월간의 인턴생활을 했다.


당시 상황은 IMF직후였기에 1998년 2월에 졸업한 내 동기들은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1년 휴학을 했었기에 1999년에 졸업하게 되었고, 그때 당시에 국가에서는 인턴이란 제도를 통해 근로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인건비를 보조해 주었다. 급여는 정부에서 인건비 보조금으로 50만 원을 지원해 주고, 채용한 기업에서 20만 원을 보태어 70만 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 월급을 받아 골다공증으로 늘 무릎이 아파 고생하시는 엄마를 위해 서울우유를 배달시켜드렸다. 내가 취직해서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우유를 배달시켜 드리고 싶었었다. 그런데 나는 불과 3개월 만에 인턴을 그만두고 말았다. 관세사무소에서 하는 일은 나에게는 너무나 재미없고 지루했다. 관세사님과 사무장님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는데, 송장을 들여다보며 시스템에 입력하고 출력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관세사님도 처음 개업하는 사무실이라 일이 서툴렀는지, 컴퓨터 시스템 사용이 어려우셨는지 우리의 일은 쉽게 착착 진행이 안될 때가 많았다. 관세사님과 사무장님, 나 이렇게 셋이서 컴퓨터 앞에 모여 화면을 들여다보며 뭐가 잘 못 되었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가 많았다. 어쩌다 우리 일과 관련되어 만나게 되는 사람도 세관에서 근무하는 세무공무원이 전부였다. 일도 사람도 재미없다 보니 나는 고민 끝에 그만두기로 한 것이었다.


대신 내가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하고 대학교 때도 편집부 동아리 활동을 하여 출판사가 친숙했는지, 나는 서울에 있는 S출판사라는 곳에 취업을 했다. 처음에는 일이 재미있을 줄 알고, 천안에 있는 사촌언니네 신혼집에 묵으며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서울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그 일 역시 2주 만에 그만두었다. 막상 일에 대해 파악하고 보니 지인들을 대상으로 출판영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대학교 시절 휴학을 하고 영업을 해보았기에 영업 자체가 싫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업 일은 내가 신념을 갖고 팔수만 있다면 잘할 자신도 있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고가의 책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내키지도 않았고 지속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구직활동을 하며 입사지원서를 넣었던 분야는 주로 ‘고객상담서비스’ 직이나 ‘매장/영업관리’ 등이었다. 당시 인디안모드 매장/영업관리직에 나름의 자신감을 갖고 지원했었지만 아쉽게도 서류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그러던 8월 어느 날, 집으로 우편물이 날아왔다. 서울에 있는 하나로통신(1997년 설립된 현 SK브로드밴드의 전신) 고객센터에 지원한 내 서류가 합격하였으니 면접에 오라는 통보서였다. 순간 마음이 너무너무 설레었다. 서울에 있는 기업이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면접의 기회만 주어지면 붙을 자신은 있었다.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임신 사실을 확인한 직후였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마당에 서서 손에 쥔 합격 통보서를 들여다보며 서울에 면접을 보러 가고 서울에서 일을 하는 나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갈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아직은 많이 표시 나지 않지만, 그래도 확실히 임신 전과는 달라지고 있었다. 아랫배를 살며시 쓰다듬어 보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스물다섯 살의 꿈과 기회를 포기하고, 뱃속에 잉태된 내 아이를 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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