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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줍음 Jul 19. 2023

마당 밖으로 나가려다 되돌아온 암탉처럼!

꿈꾸지 않았던 나의 20대 후반_두 번째 이야기

<4> 마당 밖으로 나가려다 되돌아온 암탉처럼!


큰 아이 첫돌 무렵, 어느 날 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우연히 ‘문어의 모정’이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을 보게 되었다. 어미 문어가 알을 낳고, 자신이 낳은 알들을 부화시키기 위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알들을 지키는 모습에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나도 같은 엄마로서 새끼를 지키고자 하는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보는 내내 가슴이 절절하고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문득 문어의 모정도 감동적이지만, 담담한 어조로 내레이션을 하는 성우의 목소리에도 감탄을 했다. 나도 학창 시절 책을 읽으면, 실감 나게 잘 읽는 나의 목소리에 놀란 친구들이 성우 해보라고 했었는데... 또 그런 성우가 읽을 대본, 즉 감동적인 내레이션 문구를 쓰는 작가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작가를 구성작가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 그렇지!! 나도 저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었었지!’

‘나도 한때는 책도 많이 읽고, 시도 꽤 많이 썼었지.'

'나 역시 힘든 10대 시절을 보내며 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참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책을 통해 용기와 위안을 얻고, 내 삶에도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어왔지.'

'진정한 힘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펜의 힘, 즉 위대한 작가의 힘이라고 믿으며 나도 언젠가 사람들을 살리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었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옛날 생각들을 떠올리며 10대 때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던 작가들이 생각났다. 얼마 후 나는 MBC방송아카데미에서 작가지망생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설명회를 듣기 위해 서울에 갔다. 나도 이제라도 준비하고 노력하면 ‘구성작가가 되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새로운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고 설레었다. 나같이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몰려든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설명회를 들었다. 하지만 희망과 설렘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나 같은 초짜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새끼 작가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새끼 작가들은 사전조사나 취재, 현장 등을 따라다니느라 야근이나 밤샘, 지방 출장이 잦다는 것이었다. 그런 현장에서의 오랜 시간과 경력이 쌓여야 비로소 작가로서 활동할 길이 열리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슨 고생이든 할 각오와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다면 우리 Y는 어떡한단 말인가? 누가 돌봐준단 말인가?’  남편과 나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단둘이 수원에 살고 있었다. 남편은 출근을 해서 돈을 벌고, 아이는 하루종일 24시간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자 나의 몫이었다. 우리에게는 잠시도 아이를 맡기고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아!!! 애초에 이 일은 나 같은 애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구나!’ 설레고 부풀었던 마음으로 서울에 갔던 나는 시무룩한 마음으로 수원행 버스를 탔다. 버스정류장에 마중나온 남편이 아기띠로 Y를 안고 있었다. Y는 나를 보자마자 아빠 품을 밀어내며 나에게 안기려고 팔을 벌렸다. 아기띠 채로 아이를 넘겨받으며 안아드는데, 아이는 하루 만에 더 크고 무거워져 있었다.


"아유~~ 우리 Y, 엄마 없는 동안 아빠랑 잘 놀고 있었어?! 하루동안 금세 더 많이 컸네?!!!"

"엄마는 우리 Y 두고는 아무 데도 못 가겠다! 그지 Y야?  엄마가 너를 두고 어딜 가겠니????"

그렇게 나는 마당밖으로 나가려다가 되돌아온 암탉처럼 나의 10대와 20대에 품었던 모든 꿈들을 내려놓았다.


'나는 이제 정말 엄마구나, 내 자린 여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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