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첫돌이 지나고 예방접종 주사를 맞히기 위해 당시 수원시종합운동장에 있던 장안구 보건소에 갔다. 예방접종 주사는 보건소에서 무료로 놔주는 법정 필수예방접종과 일반 소아과에서 개인의 선택으로 돈을 내고 맞추는 예방주사가 있었다. 나는 육아서에 의존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당시 형편으로 몇 만 원씩 하는 주사비도 너무 비쌌기에 국가에서 권고하는 필수 예방접종 주사만 맞추었다. 그래서 때마다 육아수첩을 들고 무료로 주사를 놓아주는 보건소를 이용했다. 보건소 안은 나처럼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엄마들로 가득 찼고, 엄청 혼잡했다.
나처럼 경험이 없는 초보 엄마들은 특히나 엄청 바빴다. 사전 문진표를 작성하고, 육아수첩과 아이를 안고 대기순서를 기다렸다. 그 사이 아이가 잠이 들면 다행이지만 그 시각에 용변을 본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칭얼거리기 시작하면 엄마들은 정신이 없었다. 겨우겨우 차례가 되어 주사를 맞히고 나면, 순하게 잠들어있던 아이들도 백발백중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육아수첩에 확인도장을 받고 다음 예방접종일 안내를 받는다. 볼일을 다 마치고 아이를 추슬러 나오려 하는 엄마들과 새롭게 진입하여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엄마들로 인해 보건소 안은 그야말로 '아기들 울음 전쟁터'였다.
그런 와중에 y엄마, K언니를 처음 만났다. 우리 Y랑 생일도 이름도 비슷한 y는 그날부로 우리 Y의 기저귀 친구가 되었고, 나 역시 나보다 네 살 위인 육아친구이자 육아동맹군 언니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날로부터 우린 집도 가깝고 '아이들 생일과 이름이 비슷한 첫 딸을 키우며 타향살이를 하는 엄마'들의 공통점으로 단박에 친해졌다. 툭하면 연락을 해 아이들 놀려준다는 명목으로 서로의 집이나 공원에서 만났고, 아이들 노는 걸 지켜보며 수다 떨고, 밥도 먹었다. 그렇게 낯선 도시, 낯선 동네에서 아이로 인해 친구도 사귀고 외로움도 달래며 나는 제법 엄마라는 역할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었다.
큰 아이가 15개월쯤 되었을 무렵 여름, y엄마 K언니로부터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언니와 나, 우리는 둘 다 회사일로 바쁜 남편 대신에 거의 독박육아 중이었기에 둘째 소식은 당황스러웠다. 혼자서 첫아이 키우기에도 버겁던 터라, 둘째는 아직 생각도 해보지 못했었다. 어쨌든 언니는 며칠간 심각하게 고민을 한 끝에 둘째를 낳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다음 해 봄이 출산예정일이어서, 첫 아이랑은 22개월 터울이 된다고 했다. 사실 둘째를 아예 안 낳을 생각이면 몰라도, 조금 일찍 생긴 아이를 안 낳을 이유가 없기는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거실에 앉아서 혼자 놀고 있는 우리 Y의 뒷모습을 보는데.. 문득 그 작은 어깨가 무척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Y에게도 자기편이 필요하겠구나. 이 세상에 부모인 우리가 없더라도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 의지할 사람이 한 명은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을, 나도 우연찮게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큰아이와 28개월 터울로 이듬해 여름에 태어났다.
내 나이 28살, 둘째가 태어나며 본격적인 육아전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하루종일 육아와 집안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직장에 출근하는 남편을 대신해 하루종일 아침부터 밤까지 단 하루, 단 한 시간도 내 시간은 없었다. 나는 오로지 아이들이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놀아주고 보살피느라 나의 시각과 청각, 모든 감각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붓고 있었다.
친구들은 한창 직장생활을 하거나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였다. 솔로인 친구는 연애를 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명품백을 샀다. 이제 막 결혼하는 친구들은 신혼집과 살림살이를 알아보고, 해외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친구들이 명품백을 들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동안에 기저귀 가방을 들고 유모차를 밀었다. 친구들이 인터넷 쇼핑에서 옷이나 화장품을 고를 때, 나는 최저가 기저귀와 분유를 검색했다.
친구들이 20대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누리며 20대가 저무는 것을 아쉬워할 때,
'나는 어서 아이들이 자라주기를!!! 나의 30대가 빨리 오기를!!!' 꿈꿨다. 열일곱 살 여고생시절, 대전S여고 문예반 4층 교실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서른은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나이'였다. 하지만 이제 딸기엄마가 된 나에게 서른은 '탈출의 신호'처럼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