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둘째가 4살이 되고, 내 나이 31살이 되던 2005년 이른 봄, 이제는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첫째는 4살부터 아파트 단지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냈었다. 하지만 남편의 외벌이에 두 아이 키우는 게 빠듯하다 보니 어린이집에 지출하는 원비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그때 당시만 해도 5살까지는 집에서 있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둘째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둘째는 둘째대로 언니가 없는 시간을 심심해하고, 나는 나대로 둘째를 계속 상대해줘야 하기에 내 시간이 더욱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아이 둘을 내가 집에서 데리고 있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아이들을 내가 다 데리고 있을까? 어차피 앞으로 평생 어딘가를 다니게 될 텐데... 어쩌면 유년시절 집에서 엄마랑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24평 아파트 단지에서 5살, 3살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들을 금세 사귀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친구가 되었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금세 언니, 동생 하며 육아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중 큰 아이들이 6살이 가까워지자 이제는 어딘가 맡길 곳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들이 팽배해졌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큰아이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은 매일같이 만나 우리 아이들을 보낼 곳을 서로 상의하고 정보를 교환하고는 했다. '이곳이 좋다더라, 저곳이 좋다더라' 새로 듣고 알게 되면 아이들 유모차에 태우고 이곳저곳 어린이집과 미술학원, 유치원 등을 찾아가 상담도 받고 시설도 살폈다. 그렇게 손품발품을 팔아가며 부지런히 알아본 결과, 가장 친하게 지내던 L언니와 나는 봉고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이웃 동네에 있는 한 미술학원에 아이들을 보내게 되었다. 물론 둘째들은 아직까지는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서로의 육아공동체를 유지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고 있는데, 우연히 이색직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어떤 여성이 풍선다발을 한가득 커다란 비닐주머니에 넣고, 행사장에 가져가 풍선장식을 하는 일이었다. 색색까지 알록달록 예쁜 풍선으로 돌잔치나 행사장을 장식하는 일이 이색적이고 재밌어 보였다. 또한 늘 고정적으로 출퇴근하는 일도 아니었고,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면서, 짬짬이 프리랜서 형태로 일할 수 있다는 점에 더욱 호감이 갔다. 게다가 일도 크게 어렵지 않아서 나도 배우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멈추었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풍선장식가'라는 직업에 대해 검색해 보고, 집 주변에서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집 주변에 ’P문화센터‘라는 곳에 비슷한 과정이 있었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P문화센터 원장님은 친절하셨다. 돌잔치나 경로잔치, 웨딩 행사 같은 곳에 풍선장식을 해주는 '풍선장식가'라는 직업 외에 웨딩이나 행사장 같은 곳에 꽃장식을 해주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도 소개해 주셨다. 문화센터에 등록하여 리본공예와 선물포장, 풍선공예 자격증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원장님과 함께 일을 다니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였다. 나는 새로운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학원비도 너무 비싸고 이수해야 할 과정도 많았지만, 나는 꼭 해보고 싶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퇴근한 남편과 함께 상의한 결과, 우리는 나의 미래에 투자를 해보기로 했다.
오전 9시경, 큰 아이를 미술학원에 가는 승합차에 태우고 손을 흔들어주고 나면, 나는 엄마들과 차를 마시러 가는 대신에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P문화센터로 갔다. 오전 10시경부터 저녁 4,5시까지 거의 하루종일을 문화센터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수업은 따로 시간표가 정해져 있지 않고, 수강생이 진도를 빨리 나갈 수 있으면 강사님이 일대일로 붙어서 하루종일 지도를 해줄 수 있는 형태였다. 나는 빨리 배워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같이 출근했다. 엄마의 열정과 욕심 덕분에 4살이 된 둘째는 거의 하루종일 리본과 풍선더미 사이에서 먹고 놀았고, 놀다가 지치면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큰아이 하원도 집이 아닌 문화센터 앞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오후 2시경부터는 큰아이와 둘째 아이도 같이 데리고 있었다. 가끔씩 우리 딸들이랑 나이가 똑같은 딸둘 맘인 L언니가 아이들을 같이 놀게 해 준다고 맡아주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갈 때면 그날 만든 풍선더미를 잔뜩 끌어안고 귀가했다. 아이들은 한창 놀다가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는 시간이었고, 엄마가 나타나면 펄쩍펄쩍 뛰면서 달려와 안기곤 했다. 어쩔 때는 놀다가 지쳐서 이른 잠이 들어있기도 했다. 집안은 점점 풍선장식과 리본장식, 선물포장으로 늘어갔다. 나는 플로리스트 과정을 배우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리본공예와 선물포장, 풍선공예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였다.